[편집실에서]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이것은 언론이 아니다

2011 12/13ㅣ주간경향 954호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48)


초현실주의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림 밑에다 ‘이미지의 배반-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파이프같이 생겼는데, 파이프가 아니라니. 철학자 푸코가 그의 그림을 갖고 철학적 해석을 할 정도로 그의 예술적 도발은 의미심장합니다.

파이프란 사전적 의미로 ‘담배를 담아 피우는 곰방대’입니다. 파이프처럼 생겼다고 해서 모두가 파이프인 것은 아닙니다. 파이프라면 담배를 담아 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처럼 번지르르하게 파이프처럼 생겼으나 담배를 담아 피울 수 없다면 파이프라고 할 수 없겠지요. 마그리트가 적은 것처럼 이미지의 배반입니다.

지난해 마그리트의 이 그림은 난데없이 화제가 됐습니다. 여당 대표가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하자, 한 네티즌이 보온병 그림을 올려놓고 “이것은 보온병이 아니다”라고 패러디하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최근 정치와 언론을 보면서 다시 마그리트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국가의 중대한 미래가 걸려 있는 한·미 FTA를 비준하면서 날치기로 통과시킨 사진 밑에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라고 써놓아야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매년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처리하고, 국민들의 입을 막는 법안을 만드는 정치는 정치가 아닌 것이 됩니다. 기존 정당에 실망한 사람들이 안철수라는 새로운 인물을 주목하는 것은 짝퉁 정치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론직필해야 할 언론이 정치·경제 권력의 눈치를 보고 거기에 더해 왜곡된 주장을 펼칠 때 이 언론에는 ‘이것은 언론이 아니다’라고 써놓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11월 30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는 3만명이 넘는 인파가 나꼼수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언론의 모습을 띤 짝퉁 언론’은 나꼼수는 언론이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정치의 모습을 띤 짝퉁 정치권’이 안철수식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보듯 담배를 피울 수 없는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닙니다. 외형은 비록 파이프 모양이 아니어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이 진짜 파이프입니다. 나꼼수 현상을 보면서 비록 외형적으로 파이프처럼 생기진 않았지만 실제적인 기능을 갖춘 파이프를 떠올려봅니다.

진짜 정치는, 진짜 언론은 어떤 것일까요? 기존 정치와 기존 언론이 자문자답하고 반성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