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우리도 참을 만큼 참았다

2011 12/06ㅣ주간경향 953호

국회 본회의실의 위층에는 방청객들이 앉는 공간과 기자들이 앉는 공간이 있습니다. 국회 본청에서 취재를 하다 간혹 본회의실 방청객 의자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이곳에 앉아 국회 본회의 진행을 보노라면 잠이 쏟아지기 일쑤입니다. 쉽게 알 수도 없는 수십개의 법안을 한자리에서 뚝딱 처리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멀쩡한 정신으로 앉아 있어도 금방 잠이 옵니다. 또 대정부 질의에서 했던 질문을 다시 하는 의원과 똑같은 답변을 반복하는 장관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또 잠이 쏟아집니다.

이런 본회의실도 이 정부에 들어서면서 아주 흥미로운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매년 예산안을 날치기로 처리하고, 중요한 법안 역시 날치기로 처리해 잠이 싹 달아나는 공간으로 전환됐습니다. 마치 초등학교 아이들이 동산에서 전쟁놀이를 하듯 진지를 사수하고 진지를 무너뜨리는 흥미진진한 놀이터가 됐습니다.

이 엉망진창인 ‘놀이’에도 규칙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손발을 쓰지 않습니다. 즉 몸싸움에는 몸으로만 민다는 것입니다. 또 장비를 쓰지 않습니다. 몸싸움은 가능하지만 장비를 쓰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본회의실에 배지 외에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철칙이 있습니다. 떠밀리더라도 배지가 아닌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갔다가는 실격이 됩니다.

연례행사처럼 펼쳐지던 이 ‘날치기 놀이’가 올해도 재현됐습니다. 예산안 통과가 아닌 한·미 FTA 비준에서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연말에 또 한 번 ‘날치기 놀이’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야 간 예산안 합의도 지금 상황에서는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당은 한·미 FTA 비준동의 협상을 하다가 “참을 만큼 참았다.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결국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자들 몰래 날치기에 성공한 셈이 됐습니다. 4분 안에 매우 중요한 결정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를 모 식품회사의 인스턴트 상품인 ‘3분 요리’로 비유했습니다.

(경향신문 DB) ‘한·미 FTA 국회 비준 무효’ 촛불집회

이런 우스꽝스런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 민망해집니다.

장바구니 물가는 올라가서 주부들은 시장에 가기가 두렵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비와 등록금 마련에 등이 휩니다. 자영업자들은 앞으로 계속 장사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합니다. 과연 FTA가 이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도움을 줄지 고려하지 않은 채 거대 여당은 날치기에 들어갑니다. 야당에 대해 참을 만큼 참았다는 것입니다.

진짜로 참아온 사람들은 여당이 아닙니다. 바로 국민들입니다. 여당은 기껏해야 며칠을 참았지만 국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권에 대해 참을 만큼 참아 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해 외치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도 참을 만큼 참았다.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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