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재벌천하지대본

2011 11/29ㅣ주간경향 952호


농고를 나온 아버지의 일기장 앞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한자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농사를 잘 짓는 것이 바로 잘 사는 길이자, 애국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60%에 육박했습니다. 지도자라면 모름지기 농민들이 잘 살도록 해야 했습니다. 가히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강조해도 될 만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만든 <농민독본>에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살던 시대는 농민이 전체 인구의 80%였을 정도이니, 농업의 중요성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풍년이 바로 나라의 살림이 풍성해지는 길이었습니다. <농민독본>에서 윤봉길 의사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이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농민 대신 산업 역군이 애국자의 선두에 섰습니다. 수출만이 살 길이 됐습니다. 국가의 총력이 수출에 집중됐습니다. 재벌이든 부도덕한 기업이든 수출이 온전한 가치가 됐습니다. 덕분에 세계에서도 그래도 좀 산다는 나라가 됐습니다. 또한 먹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수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농업은 요즘 전체 인구의 겨우 6%대에 이를 정도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이제 세상은 농자천하지대본이 아니라 재벌천하지대본이 됐습니다. 이들 기업의 상품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얻고 국익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미 FTA가 발효된다면 이들 상품의 더 많은 수출로 국익이 된다고 합니다. 국익이라고 하면 마땅히 반겨야 할 일입니다.

고3 교실을 생각해봅니다. 학교의 농사는 명문대에 몇 명 입학했느냐로 판가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명문대 입학생 숫자가 학교의 이익, 교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백명의 학생 중 불과 몇 명만이 교익에 도움을 줍니다. 자연스럽게 1% 학생들의 진학문제가 중요하고, 나머지 99% 학생의 인생은 후순위로 밀립니다. 1%의 진학 못지않게 99%의 진학도 중요합니다. 교익에 도움이 크게 되지는 못하지만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하는 그들에게도 앞으로의 인생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1%의 재벌기업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을 때, 나머지 99%의 다수가 자신의 몫을 얻는 데 있어 새로운 위험에 처한다면 국익에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닥치고 찬성’을 강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들 99%에는 이제는 천하지대본이라고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6%의 농민이 포함돼 있습니다.

국익도 과연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국익이 아니라 과연 우리의 미래를 위한 국익인가를 자세히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닥치고 국익’ 앞에서 우리는 더욱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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