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한나라당에 쇄신 바람이 크게 불 때입니다. 국회에서 민주당 당직자를 만났습니다. 인사치레로 여의도 사정을 물었습니다. 민주당 당직자는 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저쪽이 쇄신을 한다고 난리인데, 정말 쇄신할까봐 큰 걱정입니다.”
여기서 저쪽은 물론 한나라당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이 쇄신하겠다고 하는데, 왜 민주당이 우려할까요? 선거는 늘 상대적입니다. 자신의 당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편 당이 잘못하는 것도 승리의 주요한 요인이 됩니다. 한나라당이 쇄신하면 한나라당에는 유권자들이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 민주당으로서는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민주당에서 우려할 정도로 쇄신을 하겠다던 한나라당은 결국 쇄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은 화장실에서 몰래 웃었을 겁니다.

한나라당은 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쇄신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쇄신을 하는 것이 한나라당에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쇄신을 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나한테는 피해가 올 것이라는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가 거의 맞지만 대부분 전자의 핑계를 댑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쇄신은 한때 지나가는 바람으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 한나라당에는 쇄신바람이 ‘또’ 불고 있습니다. 25명이나 되는 의원이 청와대에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사과의 목소리도, 쇄신의 소식도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에서 나경원 후보가 박원순 후보에게 크게 뒤진 것으로 나타나자 굳은 표정으로 상황실을 빠져나가는 한나라당 지도부. / 박민규 기자



한나라당의 쇄신 바람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가깝게는 지난 4·27 재·보선에서 대패한 후 한나라당은 들끓었습니다. 특히 텃밭이었던 분당을 선거에서 민주당에 참패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당을 바꾸어야 된다고 젊은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이후 8월 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부결돼 사실상 한나라당이 패하는 결과를 낳았고, 또한 10월 26일 보궐선거에서 크게 패배하는 결과를 보게 됐습니다. 모두 쇄신을 하지 못한 탓입니다.

한나라당에서 쇄신의 좌절은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들어 한 해에도 몇 번씩 반복된 현상입니다. 한나라당에서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기에 답답해 할 일은 아니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답답합니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은 지금 여당이기 때문입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 구닥다리 정당, 웰빙 정당으로 안주하면서 자신들의 살 길만 궁리한다면 국민들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지기 때문입니다. 내년 총선과 대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쇄신이 싫어요’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쇄신 좀 해주기 바랍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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