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사극 <뿌리깊은 나무>에서 태종과 세종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다가 몇 년 전에 실록에 대한 기사를 쓴 것이 떠올랐습니다.

<뿌리깊은 나무>의 한 장면

 

사극에서 태종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태종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일까요? 사관(史官)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입니다. 태종4년인 1404년의 일입니다. <태종실록> 기사에는 사냥을 좋아하던 태종이 노루를 쫓다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2월 8일의 기사입니다.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勿令史官知之)

태종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사관을 얼마나 무서워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이 기록이 재미있는 것은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는 내용을 어떻게 사관이 알았는지 <태종실록>에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코미디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죠. 사관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렇지만,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는 내용까지 빼놓지 않고 기록한 것도 흥미롭습니다.

태종은 사관을 싫어했습니다. <태종실록> 1401년 4월 29일 기사를 보면 사관 민인생이 편전에 들어오자 태종은 이곳은 쉬는 곳이니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민인생은 물러나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臣如不直, 上有皇天”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신이 만일 바르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사관을 싫어한 태종이었으니 아들인 세종이 <태종실록>에 무엇이 실렸는지 궁금해할 만했습니다. <세종실록> 1431년 3월 20일 기사를 보면, 세종은 실록을 한 번 보고싶다고 했습니다. 신하들은 그렇게 되면 사관들이 앞으로 사실을 기록할 수 없게 된다고 말렸습니다. 세종도 어쩔 수 없었던지 아버지의 실록을 결국 보지 못했습니다. 조선시대 사관의 힘은 이처럼 왕이 두려워할 만했고, 그래서 이들이 기록한 실록 역시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 팟캐스트 <나꼼수>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측근 출신 사장이 방송을 장악하고 비판을 회피하면서 두루뭉수리로 넘어가려고 할 때, 보수 언론이 이 정부에 걸맞은 프레임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을 때 새로운 유형의 팟캐스트가 등장한 것입니다. 해학과 풍자의 마당이 된 팟캐스트를 보며 이 환호가 무엇을 말하는지 직시해야 합니다.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는 이 시대에 언론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