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이하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말하자면 정치권이 크게 요동치고 있는 폭풍정국에서 ‘재발견’된 정치인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조국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기성 정치권이 아닌 이른바 제3지대에서 급부상한 정치적 ‘빅파워’의 일원이다.

그는 현재 야권통합기구인 ‘혁신과통합’의 상임공동대표로서,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를 디자인하고 구축하는 일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 다른 제3지대 정치파워와 차별되는 이런 그의 행보는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저서 제목이 말해주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인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며 그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표현한 바 있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꼼수다’의 진행자 김어준씨는 최근 저서 <닥치고 정치>에서 지금과 같은 시대와 정황에서 문 이사장이 통하는 것은 “그가 드러내는 품성, 그로 인한 아우라가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자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의 운명’은 노 전 대통령이 구속하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펼쳐져야 하고, 지금 그렇게 가고 있다는 얘기다.

거의 매일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숨 가쁜 일정을 보내는 문 이사장을 지난 11월 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노무현재단에서 만났다. 오전에 혁신과통합 대표단과 함께 국민참여당을 방문하고 점심에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같이 식사를 하며 야권통합 문제를 논의한 직후였다.

손학규 대표와 점심을 하면서 무슨 좋은 소득이 있었습니까.
“그냥 통합에 대한 의지를 서로 확인했죠, 뭐.”
간단한 답이었다. 매우 정치적인 답변이었지만 전혀 정치적이지 않게 들리는 게 신기했다. 문 이사장이 갖고 있는 이런 독특한 화법과 전달력이 인터뷰 내내 기자의 심중을 묘하게 건드렸다. 말투는 어눌하지만 논리는 매끄럽고, 힘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얘기하는데도 진중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말하자면 ‘말의 아우라’라고 할까.

손 대표가 ‘원샷 전당대회’를 제안한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 과정처럼 새로운 모습과 감동을 보여주고 많은 참여가 이루어지는 형태의 전당대회가 바람직할 것이거든요. 구체적인 것은 통합추진기구에서 논의해봐야겠죠.”

각 당이나 정파의 태도를 보면 통합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굉장한 정치적 힘이나 강한 여론의 압박 같은 게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추진력이 어디서 나올까요.
“통합의 필요성이나 절실함은 서울시장 선거가 잘 보여줬죠. 그렇게 해야 이긴다는 것 아닙니까. 우선 다 모여야 된다는 거죠. 기존의 야권 정당에서 시민사회세력, 심지어 박원순·안철수로 대표되는 제3세력까지 다 합쳤잖아요. 게다가 그냥 합치기만 하고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간 게 아니라 선거운동도 젊은 사람까지 함께 다 참여하고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니까 된 것 아닙니까. 총선·대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거예요. 그보다 더 강한 추진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혁신과통합이 안철수 원장의 동참을 요청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라고 한다. 문 이사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지금의 지지도가 계속되면 (내년 대선에서) 우리 진영의 대표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안철수 원장은 지지도 면에서 가장 앞서 있고, 지지층도 기성 정당이 포섭하지 못했던 정치 무관심층, 젊은 층, 무당파, 기존의 진보 대 보수 구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세력까지 아주 폭넓잖아요. 그런 세력까지 다 와야만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죠. 또 안철수 원장 입장에서는 지지도가 높다고 하지만 그것이 딱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조직화돼 있지는 않단 말입니다. 독자적으로 제3의 신당을 만든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일로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와 힘을 합치는 것이 그쪽 입장에서 봐도 좋은 일인 거죠.”

말하자면 안 원장을 ‘조기등판’시키자는 얘긴데, 그렇게 하면 민주당 쪽에서 섭섭하지 않을까요.
“민주당은 집권이 목표인 정당이잖아요. 집권 의지가 없으면 그건 정당이 아니죠. 집권을 목표로 하고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해서 정말로 절박함이 있어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절실한 목표가 있다면 말이죠. 그런데 민주당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러면 합쳐야죠. 민주당이 제일 환영할 일이죠.”

일정은 촉박한데 진보정당은 야권통합보다 내부통합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개문발차(開門發車)하겠다고요?
“다 함께 통합추진기구에 참여해서 통합의 길로 가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가능한 시기까지는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하다가 그 시기가 넘어서게 되면 그때는 불가피하게 그 시점에서 통합에 동의하는 세력끼리 우선 통합추진기구를 만들어서 통합의 길로 출발하고, 나머지 정당이나 세력은 우리가 협의를 계속해서 추가로 합류하는 노력을 해야 되겠죠.”

서울시장 선거와 달리 부산 동구청장 선거에서는 져서 실망스럽겠습니다. ‘문풍’이 ‘박풍’에 밀렸다든가 문재인의 한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꼭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말을 끊으며) 아니오. 그렇게 봐도 할 수 없고요. 문풍 별 거 아니니까.(웃음) 기본적으로 제가 부족한 건데, 그 원인을 좀 넓게 보면 결국 서울시장 선거하고는 다른 방식이었잖아요. 서울시장 선거는 우리가 통합의 방식으로 갔고, 부산 동구청장 선거는 선거연대, 단일화 방식으로 갔던 거예요. 한 마디로 말하면 서울시장 선거는 이기는 길로 온 것이고, 부산 동구청장 선거는 지는 길로 간 거죠.”

비록 지긴 했지만 지난 6·2지방선거 때는 민주당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가 45% 득표를 하는 등 가능성을 보여주었잖습니까.
“이번에 부산 동구에도 바꿔야 된다는 열망은 꽉 차 있다고 느꼈어요. 부산 전체도 마찬가지고요. 한나라당을 20년 이상 지지해준 결과가 도대체 뭐냐는 거죠. 좋아진 것 하나도 없어요. 이젠 짜증나요. 한나라당으로부터는 민심이 많이 떠났는데, 문제는 한나라당을 떠난 민심이 아직도 기존의 야권 정당을 대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거예요.”

호남당으로 생각하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래서 시장 선거 나왔을 때 가장 많은 권유를 받은 것이 무소속으로 나서라는 거였어요. 실제로 무소속으로 나갔으면 됐을 거예요. 이번에 이해성 (동구청장) 후보도 다니면서 무소속하면 좋을 건데, 그런 얘기를 참 많이 들었거든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건 민주당 책임도 아니고 민주당이 들으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일 텐데, 그러나 현실이에요. 그 현실을 민주당이 혼자 힘으로 넘어설 수 있느냐… 언젠가는 넘어서겠죠. 답답한데 당장 안 넘어서지니까 우리가 다 통합해서 넘어서자는 것 아닙니까.”

그동안 정치 참여를 거부하다가 지난 10·26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정치를 해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재·보궐선거를 돕긴 했지만 제 개인이 개인적으로 정치를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정신과 가치를 확산시키는 일을 한다든지, 혁신과통합을 통해서 야권통합운동을 하는 정도는 시민정치운동 또는 정치적 시민운동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통합이 잘 돼서 대통합정당이 만들어지면 통합을 주창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차원에서 적어도 당원으로라도 참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그러면 그때부터 제가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르죠. 아직은 경계선상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어떻든 역할이 맡겨진다면, 운명이 지워진다면….
“제가 받고 있는 지지율이 소중하니까 헛되게 하지 않고 보탬이 되게끔 해야겠다는 이야기죠. 반드시 제가 어떻게 뭐 나서서, 대표선수가 돼서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요. 혹시 그런 생각 때문에 인터뷰하는 거라면 지금 잘못 하시는 거예요.”

필요하다면 내년 총선에도 출마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출마하겠다고 한 적은 없고요. 어쨌든 간에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논의할 거다, 이랬더니 출마 가능성까지도 보는 게 아니냐고 언론에서 해석을 한 거예요.(웃음)”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씨가 <닥치고 정치>에서 문 이사장은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췄을 뿐 아니라 박근혜 대세론을 넘어설 수 있는 야권의 유일한 카드라고 했더군요.
“김어준씨의 주장이나 논리에 동의하는 부분은 정치에서 사사로움과 사사롭지 않음, 거기에 동의해요. 사사롭지 않게, 공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세가 국정에는 정말로 꼭 필요하죠.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하도 이명박 정부가 사사롭게 정치를 하고, 그 폐단이 너무나 크고, 사람들한테 많은 실망을 주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참으로 절실하게 다가온 거지요. 사사롭지 않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고, 거기에 더해서 필요한 게 시대정신 같은 게 있어야 되는 거죠.”

스스로 사사롭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시대정신은 안철수 원장으로 대표되는 또 다른 덕목이나 가치에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이다. 시대정신에 대한 얘기는 이전에 먼저 전 정권의 핵심에 위치에 있었던 그가 후임 정권에 대해 그토록 실망한 까닭부터 물었다.

전임 정권에 대해 가능한 한 비판을 삼가려고 했는데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차원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안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면이라고 생각하고요. 우리 역사가 발전해나가는 방향이 있는 거거든요. 속도나 정도에서 차이는 있지만 모든 정부가 그 방향대로 해왔어요. 그런데 딱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완전히 거꾸로 가버리는데, 그게 국정의 모든 방면입니다. 민주주의? 퇴행했죠. 복지? 거꾸로 갔죠. 남북 평화? 완전히 망가뜨렸잖아요. 생태 환경? 마찬가지고요. 시대정신 같은 게 전혀 없어요. 사사롭지 않은 건 물론이고요. (처음으로 목소리를높이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정부예요.”

국정 경험자로서 그 원인이 뭘까 여쭤보려고 했는데, 이해할 수 없다니까 아예 얘기가 안 되겠네요.
“개별 사안에서 판단을 잘못해서 결과가 안 좋다는 차원이 아니고 기조 자체가 거꾸로 가버리니까요. 어떻게 집단 전체가 그렇게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 제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가요.”

그래도 가장 안타까운 점을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참여정부도 잘못이 많았을 테죠. 하나하나 정책을 놓고 따지면 잘못했고 부족했고 한계가 있었다고 다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발전하는 방향에는 맞추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우리가 자부할 수 있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남북 평화를 망친 게 가장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복지, 뭐 이런 부분은 5년 동안 뒷걸음질쳐도 그 다음 정부가 잘 해서 만회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남북관계는 신뢰가 쌓여서 겨우 한 걸음씩 발전할 수 있는 것이어서 한 번 망가뜨리고 신뢰가 깨지고 나면 정권이 바뀐다 해도 그 신뢰를 다시 되쌓는 데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죠.”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가치나 시대정신이 봇물처럼 분출하는 시기입니다. 내년 양대 선거에서 등장할 새로운 가치로서 문 이사장께서 특히 주목하는 게 무엇입니까.
“새로운 가치와 관련해서는 민주주의, 복지, 남북 평화, 환경 생태, 노동, 삶의 질, 이런 것들이 다 있는데요,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걸 들자면 저는 경제민주화, 경제적 민주주의를 꼽고 싶습니다. 1% 대 99% 사회, 즉 부나 성장의 혜택이 상위 소수한테만 편중이 되면서 그 때문에 다수는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성장해도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지는 현실, 이거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복지만 갖고는 한계가 있어요. 복지는 이 벌어진 격차를 놔두고 그것을 보완하려는 사후 노력이기 때문에 애당초 그 격차 자체를 막아주는 경제민주화가 지금은 아주 절실한 것 같습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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