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단일화 후보 선거가 한창이었던 10월 3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이 나오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솔깃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병력이 많을수록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카이사르는 적보다 열세인 병력으로 싸우는 것이 반드시 불리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우선 병사들의 수가 적으면 군량을 확보하는 문제도 그만큼 줄어든다.’

병력이 많으면 유리한 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병력이 많다고 해서 전쟁에서 꼭 이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전쟁은 단순한 산술 계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는 이것을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기원전 54년 9월 20일 알레시아(현재 프랑스 중부지역)에서 갈리아와 맞선 로마 군은 불과 5만명이 채 되지 못했습니다. 알레시아 성채에는 8만명의 갈리아 군이 있었고, 이 성채를 둘러싼 로마 군을 다시 26만명의 갈리아 군대가 에워쌌습니다. 로마 군의 앞과 뒤에 모두 34만명의 대군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카이사르의 로마 군은 승리했습니다.

 

이 대목을 읽고 있는 순간, 국민참여경선의 투표율이 50%를 넘어섰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은 일반 선거때 한나라당의 심정이 돼 있었습니다. 아침에 투표를 하러 오는 사람이 많고, 조직적인 투표가 많아야 하며,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투표해야 하며, 전체 투표율이 낮아야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늙은 민주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서울의 48개 지역구마다 조직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결국 단일화 선거에서 패배했습니다.

바람이란 도대체 실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일으키려 해도 쉽게 일어나지 않고, 조직화하려 해도 조직되지 않습니다. 선거에서는 바람을 약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바람은 힘이 조금 셉니다. 특히 바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바람의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입니다.

갈리아 전쟁을 마치고 난 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기>를 펴냈습니다. 당시 속주의 총독은 임기 중에 모든 사건을 원로원에 보고해야 했습니다. 카이사르의 최대 정적인 폼페이우스도 원로원에 보고서를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그쳤지만 카이사르는 책으로 펴내 일반 시민들이 읽도록 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비롯한 동시대인들과 달리, 원로원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지지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다.’

원로원의 지지를 얻었던 폼페이우스와 일반 시민의 마음을 샀던 카이사르는 결국 기원전 48년 8월 9일 그리스에서 대격돌을 했습니다. 파르살로스 평원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폼페이우스의 군대는 4만7000명이었고 기병이 7000기였습니다. 반면 카이사르의 군대는 2만2000명이었고 기병은 1000기였습니다.

누가 승리했을까요? 누가 승리했는지는 벌써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원로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서 지지를 받던 카이사르가 두 배 정도 숫자가 많은 적을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