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가 갑자기 편찮아져서 늦은 밤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처음부터 곤혹스런 상황을 맞아야 했습니다. 밀린 환자 치료 때문에 두 시간이 지나야 진료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몸을 겨우 가누는 노모가 몸을 누일 곳은 행사장에서나 등장하는 접이식 간이의자였습니다. 얼굴에 두드러기가 잔뜩 피어 응급실을 찾아온 아이의 부모는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대한민국 어느 응급실에서나 있을 법한, 그래서 익숙한 광경으로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 환자가 응급실에 들이닥쳤습니다. 우리나라에 여행온 중국인 여성인 것 같았습니다. 이 환자의 남편인 듯한 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응급실 상황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이 환자에게 주어진 편의는 단 하나, 휠체어 의자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여행사 직원이 병원에 빨리 진료를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밀린 환자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환자 남편은 절규했습니다. 환자가 경련을 하며 정신을 잃었던 것입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의사가 와서 처치를 했습니다. 환자는 쇼크상태에 빠진 듯했습니다. 환자 남편은 분노했습니다.

제 직업이 기자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환자 남편은 저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분노를 표현했을 것입니다. 기자의 눈으로 볼 때 대한민국 사회에서 응급실 문제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이미 수많은 언론에서 수백 번, 수천 번 응급시스템 개선에 대해 다뤘습니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에 뉴스로서는 부적격입니다. 응급실 환자 가족이 된 저는 그냥 그렇게 끈질기게 기다리다가 두 시간 후에야 진료라는 것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국감에서도 응급실은 시장바닥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한 사람이 분노를 해도 금방 개선이 될 만큼 우리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응급 의료수가가 어떻니, 의료보험제도가 어떻니, 응급의료인력 부족이니, 종합병원문제니 하는 문제를 따지다 보면 도대체 어디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영리병원 도입이라는 엉뚱한 발상을 하게 됩니다.



최근 <도가니>라는 영화로 들끓고 있습니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6년 전 한 청각장애 특수학교에서 교직원들이 장애인 학생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폭행은 특수학교에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더 큰 폭행은 법정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이뤄집니다. 피해자들은 음지에서 고개를 숙이고 가해자들은 양지에서 고개를 쳐듭니다. 응급실 문제처럼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분노는 몸에 해롭습니다. 특히 혼자서 분노했다가는, 게다가 특히 밤에 분노했다가는 응급실 행으로 이어지고, 응급실에서 결국 또 한 번 분노하게 됩니다. 절대로 혼자서 분노하지 말고, 대낮에 함께 분노해야 합니다. 공분해야 합니다. 공분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집니다. 그런데 공분해야 할 일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