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점령 시위대, 제3의 정당 만들어낼 가능성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10월 22일 미국 시애틀에서 '시애틀을 점령하라' 시위가 벌어졌다. 월가 점령 시위는 뉴욕을 넘어 미국 내 다른 도시들과 세계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 블룸버그연합뉴스



‘1 대 99’라는 표현을 유행시키며 전 세계적인 반향과 동시다발적 시위를 이끌어내고 있는 월가 점령 시위대의 분노는 일차적으로 금융권의 탐욕을 향한다. 그러나 금융자본과 상생하며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를 방조한 기성 정치권력 또한 시위대의 분노를 비켜갈 수 없다.
 <주간경향>은 지난 7월 온라인상에서 처음으로 월가 점령 시위를 제안해 시위의 촉매제 구실을 한 시민단체 애드버스터 공동설립자 칼레 라슨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월가 점령 시위대가 금융권의 탐욕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공화 양당 구도가 지배하는 미국 정치 지형에서 제3의 정당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1989년 설립된 애드버스터는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가 발행하는 잡지 <애드버스터>는 패러디 광고로 상업광고를 풍자하고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매스미디어를 비판한다. 단체 이름 자체가 광고 파괴자(Adbusters)라는 뜻이다. 인터뷰는 한국시간으로 지난 10월 27일 오전 2시에 이뤄졌다.

-월가 점령 시위를 제안한 배경은 무엇인가.
 “애드버스터는 올해 ‘아랍의 봄’을 지켜보면서 대단히 흥분했다. 튀니지와 이집트 사람들은 정권을 교체했다. 애드버스터에서 그 현상을 두고 토론을 했는데, 아랍 같은 하드 레짐 체인지(급격한 방식의 정권교체)는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소프트 레짐 체인지(부드러운 방식의 정권교체)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기도 딱 맞아떨어졌다. 왜냐하면 금융위기로 집과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절망과 금융투기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아랍인들이 해냈던 일을 미국에서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시위 초기에 미국의 주류 언론은 월가 점령 시위를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주류 언론의 태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상업적인 주류 언론은 우리가 무너뜨리려고 하는 체제의 일부다. 물론 미국은 이집트와는 다르다. 그러나 미국은 금융투기세력과 초대형 미디어 재벌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 때문에 주류 언론이 우리 시위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시위 초기부터 분명했다. 주류 언론은 우리가 곧 사라질 것이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주코티 공원에 꾸준히 사람들이 모이고 브루클린 다리에서 700명이 경찰에 체포되자 시위가 커졌다. 그러자 더 이상 주류 언론도 이 시위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왜 ‘점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나.
 “점령이라는 표현에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그 표현은 전 세계적인 봉기가 일어났던 68혁명 당시 대학생들이 대학 건물을 점령하고 시위를 벌인 데서 따온 것이다. 당시 대학생들은 대학의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장소, 예컨대 총장실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벌였다. 월가를 점령하자고 한 건 68혁명 때 그랬던 것처럼 상징적인 장소를 점령해보자는 취지였다. 68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전 세계적 혁명이 일어난 사건이다. 지금의 월가 점령 시위는 68혁명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68혁명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참가하는 이번 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백인에 비해 소수인종의 참여가 적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좌파들이 흔히 하는 불평이다. 이번 시위에 대해서는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 ‘흑인이 많지 않다’ ‘라틴계가 많지 않다’ 등의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시위가 매우 포괄적인 운동이라고 본다. 점령 시위 현장에 한 번 가봐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운동이 어느 특정 집단만을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젊은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운동의 바닥에 깔려 있는 추진력은 미래에 대한 젊은이들의 절망감이다. 결혼을 하고 집을 사서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부서졌다. 젊은이들을 기다리는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내가 일어나 내 미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내겐 아무런 미래도 없을 것’이라는 정서가 젊은이들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시위대는 금융자본의 탐욕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자본주의 자체를 반대한다는 뜻인가.
 “시위대는 지금의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세계 경제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경제가 아니다. 일종의 카지노라고 봐야 한다. 내가 이야기를 해본 시위 참가자들은 자유시장이나 자본주의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그들은 카지노 자본주의, 기업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자본주의다.”

-새로운 종류의 자본주의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은 제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좋은 모델이다. 시위대가 원하는 것은 정상적인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를 움직여온 기업 자본주의를 급진적으로 변혁하는 것이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린 시애틀에서는 반세계화 운동인 소위 ‘시애틀 투쟁’이 일어났다. 시애틀 투쟁과 비교해 월가 점령 시위의 특징은 무엇인가.
 “나도 당시 시애틀 투쟁에 참가했다. 시애틀 투쟁에 참가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월가 점령 시위에도 참가하고 있다. 둘을 비교하면, 시애틀 투쟁은 지도부가 있는 수직적 운동이었다. 인터넷의 영향력도 지금보다 약했다. 월가 점령 시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사용하고 있고 평등하고 민주적이다. 나는 이번 월가 점령 시위가 68혁명 때 실패하고 10여 년 전 시애틀에서 실패했던 일들을 성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도부가 없는 탈중심적 시위라는 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나.
 “시위대는 미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세계 금융시스템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 달 만에 멋진 논쟁을 끌어낸 운동에 대해 불평할 수는 없다. 월가 점령 시위는 제2기로 접어들고 있다. 제1기에는 다소 산만했지만 2기로 접어들면 토빈세 도입, 금융개혁 입법, 정치자금 개혁 입법 등에 대한 명확한 요구들이 나올 것이다. 겨울이 지나 시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면 내년에는 제3의 정당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

-10월 초에 노동조합이 시위에 합류했다. 그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
 “노동조합의 합세로 규모가 커지고 시위대에 새로운 에너지가 투입됐다. 미디어의 관심이 커지면서 더 많이 알려졌고 자신감도 커졌다. 노조만이 아니라 어떠한 단체와도 함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노조에 흡수되거나 민주당의 품 안으로 뛰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 정치 엘리트에 대한 시위대의 입장은 무엇인가.
 “월가의 금융자본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많은 돈을 후원했다. 그것이 금융개혁법안인 도드-프랭크법이 누더기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문제는 워싱턴 정치가 돈에 오염돼 있다는 것이다. 로비스트들이 워싱턴을 활보하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 심장부에는 돈과 연결된 부패가 자리잡고 있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아래로부터 민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지배하는 기업국가라고 생각한다. 시민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는 기업이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시위대는 레짐 체인지를 통해 이런 구조를 바꾸고 싶어한다.”

-그런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내겠다는 건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 1929년의 대공황과 같은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급진적 변화가 가능하다. 미국인들은 급진적인 민주주의 혁명을 이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미국의 역사 자체가 그러한 민주주의 혁명의 역사다. 그렇게 되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지금의 양당 지배 구도는 끝날 것이다.”

-시위대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 2008년 선거에서 오바마에게 표를 던진 젊은이들은 올해 초부터 더 이상 오바마가 자신들의 편이 아니란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월가의 금융자본을 제어하지도 못했고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지도 못했다. 그에게는 그만한 배짱이 없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오바마가 미국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손으로 변화를 만들어내자.’ 이것이 젊은이들이 들고 일어난 이유다.”

-티파티는 공화당 의원들을 움직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맞다. 티파티 회원들은 공화당과 적극적으로 결합해 미국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티파티 운동은 이제 끝나가는 분위기다. 미국인들 중 티파티에 호의적인 사람은 25%다. 반면 월가 점령 시위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60%다. 월가 시위대가 티파티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애드버스터의 공동설립자 칼레 라슨 / 애드버스터 제공



-월가 점령 시위대가 미국 진보세력의 티파티 운동이 될 수 있을까.
 “티파티 운동이 우익의 운동이라면 월가 점령 시위는 좌파의 운동이다. 그러나 두 운동의 기저에 있는 정서는 매우 흡사하다. 미국이 쇠락하고 있으며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정서가 티파티 운동을 낳았는데, 그런 정서는 월가 점령 시위대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년에 티파티 회원들과 월가 점령 시위대가 토론을 거쳐 함께 제3의 정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아주 낯설고 새로운 정치적 연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환상적이지 않을까?”

-한 티파티 지도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주말마다 콘서트를 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위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앞서 말했듯 운동의 제1기는 끝나가고 있다. 곧 겨울이다. 공원에서 눈을 맞으며 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수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자기 지역에서 국지적 차원의 프로젝트를 기획할 것이다. 운동의 분화다. 분화를 통해 무수히 많은 작은 운동들이 탄생할 것이다. 수천개의 작은 운동이 바닥으로부터 체제를 향해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있다가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씩 결합해 세계적인 차원의 연대 시위를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월가 점령 시위가 지금까지 거둔 최대의 성취는 무엇이라고 보나.
 “좌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희망이 나타났다. 지난 수십년 동안 좌파들이 마음으로 품고 있던 생각들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점에서 현 단계에서 월가 시위가 남긴 최대의 유산은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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