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은 ‘삼수’가 유명하다. 호수와 막국수, 그리고 이외수다. 지금은 춘천이 아닌 화천군 상서면의 감성마을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이외수는 춘천의 삼수로 불린다. 지난 강원지사 보궐선거 유세 때 엄기영·최문순 후보가 감성마을을 찾았다. 그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씨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함을 보여준다.

트위터의 시대다. 온갖 뉴스와 정보가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간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신라호텔의 한복 입장 불가 사건 등이 트위터를 통해 사회 현안으로 부각됐다.
유명인사들이 트위터를 통해 투표를 독려한 덕에 4·27 재·보궐 선거 투표율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위터에서 이외수는 ‘대통령’으로 불린다. 팔로어가 72만명이나 된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의 팔로어는 20만명,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팔로어는 9만2000명이다. 트위터에서는 어떤 정치인도 그를 뛰어넘지 못한다.
소설 700만부를 판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가 ‘트위터 대통령’, ‘강원도의 힘’, ‘소통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가 <주간경향>과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함께 진행하는 ‘탁현민의 시사콘서트’ 네 번째 손님으로 초청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를 찾아가는 길은 멀었다. 내비게이션에는 출발지인 서울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110㎞로 나왔지만 200㎞ 이상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은 좁고, 험하고, 구불구불했다. 강원도 화천군에 접어들면서 감성마을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타고 올라간 후에야 감성마을에 도착했다. 속세와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이외수는 속세와 활발하게 소통을 하고 있었다. 부조화 속의 조화라고나 할까.

그는 시사콘서트 참석을 위해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났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오후 3시나 되어야 일어난다. 낮과 밤이 바뀐 전형적인 작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보다 기자와 동행한 여섯살 아들을 더 반겼다.

“요즘 가장 바라는 것은 손주다. 며느리가 ‘됐다’고 전화했을 때 우리 부부는 손주가 생긴 줄 알고 좋아했는데 알고보니 신춘문예에 당선된 거였어. 그때 약간 실망했다.”(웃음)

이외수씨의 며느리 설은영씨는 2011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집시, 달을 굽다’로 당선됐다. 방송작가 출신의 설씨는 이씨의 열혈 독자였다. 인터뷰는 문학이나 인생보다 세상과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그는 트위터에서처럼 직접화법을 사용했다.

등단 40년의 중견 작가다. 사회문제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불편하지 않나.
“피곤하다. 환갑이 넘었는데도 개새끼, 소새끼라는 욕설을 듣는다. 젊은 작가들은 이 때문에 블로그를 폐쇄하기도 한다. 30~40대 작가들도 포기하는데, 이 나이에 젊은애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겠나.”

욕을 얻어먹으면서 왜 앞에 나서나.
“이 시대는 어른이 없는 시대다. 애들이 있는 시대도 아니다. 가치관이 전도된 사회다. 정체성이 상실됐다. 어른으로서의 정체성도 없고, 애들도 정체성이 없다. 잘못 행동하는 중학생을 꾸짖는 대학생이 있나. 이건 우리 정서가 아니다. 내가 볼 때 문화적으로 패닉 상태다. 모든 사람들이 갈피를 못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최소한의 상식이나 양식이 붕괴됐다. 내가 왜 나서냐고. 똥이 무섭거나 더럽다고 피하면 온 세상이 똥밭이 된다. 나라도 치워야 하는 것 아닌가.

트위터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40자만 쓸 수 있는 트위터가 성향에 맞나.
“나는 몇 십년 전부터 감성의 중요성을 말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감성사전>을 만들었다. 거의가 단문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런 유형의 글쓰기를 해왔다. 단문에 오랫동안 익숙했는데, 140자 트위터가 나온 것이다. 나와 궁합이 맞는 미디어다.”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다들 무엇을 고민하는지 궁금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많다.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말하는 가치, 세상이 강조하는 진로에 세뇌되고 치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사람들의 잠재력을 길러주지 않는다. 너도 나도 소모품으로 전락되고 있다.”

140자 단문이 작품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닌가.
“트위터는 단문 쓰기를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트위터에는 소재와 정보가 넘쳐난다. 정치가들에게 트위터는 표를 낚는 낚시터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좋은 습작 공간이다. 트위터를 사용한 지 1년 후에 도움이 됐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소설을 써보기도 했다. 2009년 1월 1일에 시작해서 1월 7일, 단 일주일 만에 단편소설을 끝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트위터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계속 지적하는 힘은 뭔가.
“나를 팔로잉하는 이들이다. 70만명이 넘는 이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안 보고 달을 보는 이들이 이들 중 90%는 넘는다고 믿는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말을 많이 하던데.
“이 대통령이 국격을 들먹이는데,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막강해도 문화수준이 낮으면 만년 후진국이다. 그런 점을 각인시켜주고 싶다. 우리 사회는 문화예술의 후진국이다.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억울하고 격분할 수밖에 없다.”

정치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는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 속도가 느린 동물들의 권위놀이다. 천년 전 신라 때도 간신모리배가 있었다. 신라 때와 지금이 전혀 다르지 않다. 정치의 속성이다. 국민들은 훨씬 앞서서 미래를 내다보고 살아가는데, 정치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것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치에 대해 전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정치는 정치인이 바꾸는 게 아니다. 국민들의 전체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 국민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는 변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충돌했다.
“나에게 정치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원고지만큼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때 내가 지적했던 것은 단순히 맞춤법이 아니었다. 한글과 국사를 영어로 교육시킨다고 했을 때 국가관이나 교육관이 너무 안 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내 생각과 반대로 사회가 흘러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는 것이 가슴 아프다.”

대통령과 독대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내 이야기를 알아들을지 모르겠다.(웃음) 묻고 싶은 게 있다.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시느냐’고. 물론 ‘사랑한다’고 대답하겠지만, 믿지 못할 것 같다.”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역사 속의 임금은 농사철에 가뭄만 들어도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지금 시대에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은 사랑이다. 수많은 좋은 지도자들이 백성을 사랑했다.”

인터뷰 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씨와 친분이 있는 김미화씨가 MBC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하차했다. 4·27 재·보궐선거에서는 야권 단일화가 맹위를 떨쳤다.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경기도 분당을에서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당선됐다. 강원도지사 선거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파란이 일어났다. 이씨의 생각이 궁금했다. 며칠 후 전화 인터뷰를 했다.

재·보궐선거 결과가 놀랍지 않나.
“국민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강원도의 경우 부정선거에 대한 응징의 뜻이 담겨 있는 결과다. 강원도는 늘 한나라당의 표밭이었다. 이번에 분명한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좀 더 건강한 강원도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표현된 것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당선자와도 친분이 있지 않나.
“후보 시절에 나를 찾아왔을 때 한 이야기가 있다. 강원도가 이제는 자연만 가지고 살아남는 시기는 지났다. 문화와 예술이 자연과 접목되어야만 강원도의 수준이 높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강원도로 만들었으면 한다.”

얼마 전 김미화씨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얼마 전 트위터를 통해 나에게 글을 남겼는데 마음이 아파 답변을 못했다. 언론이 국민의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만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언제든지 감성마을에 와서 쉬고 갔으면 좋겠다. 이곳에 와서 욕이나 실컷 하라고 하고 싶다.”

그는 문단에서 외면받는 작가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한다. 노숙자, 거지 등 기인 같은 그의 삶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컴퓨터다. 컴퓨터가 흔치 않은 시절부터 원고지 대신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했다. 인터넷이 없을 때도 천리안, 하이텔 같은 통신을 이용해 채팅을 했다고 하니, 트위터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다.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이나 사용했던 맥 컴퓨터도 10년 전부터 사용해 왔다고 한다.

1992년부터 컴퓨터로 원고를 썼다고 하는데.
“엎드려서 글을 써왔는데, 허리가 너무 안 좋았다. 병원에 가니까 글쓰는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하반신 마비가 온다고 했다. 둘째아들(감성마을을 운영하고 있다)이 컴퓨터를 권했다. 처음에는 작가가 기계를 이용해서 글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당시 기계치여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도 두려웠다. 컴퓨터를 사면 배우게 된다는 말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글과 트위터 하는 시간 외에는 무엇을 하고 지내나.
“예전에는 술로 스트레스를 다 풀었다. 주량으로 이야기하면 무박 3일, 이런 식으로 마셨다. 한창 때는 잠 안 자고 며칠을 마셨느냐로 주량을 계산했다. 그런데 술과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웃음).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술과 담배를 끊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고, 생명 단축의 지름길이다. 내가 목표하는 글을 쓰려면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집에 설치한 노래방 기계를 가지고 2시간씩 노래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며느리도 등단을 했다.
“행복하다. 며느리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작가라고 느낀다. 예술은 힘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고 감동받는 독자를 보는 것, 그것만큼 작가가 행복한 일은 없다.”

작가들은 자기애가 강하다. 그래서 주변 사람, 특히 가족들이 힘들어한다.
“작가가 밑바닥까지 가면 가정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가정이 있다는 것만큼 거룩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챙겨야 한다고 느꼈다. 젊었을 때는 노숙자 생활도 하면서 항상 무시당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집에서는 인정을 받았기에 견뎠던 것이다. 항상 가장과 남편의 역할을 잘하려고 노력했다.”

과거의 노숙자 생활, 기인의 삶 등이 작품의 소재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나.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웃음) 그런 체험들은 인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런 체험들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비참하게 될 수 있는지를 경험한 후에야 느꼈다. 정신만은 고결하도록 노력했던 것이다. 젊었을 때의 경험이 <들개>같은 작품의 소재가 됐지만, 소설 소재를 구하기 위해 그런 삶을 산 것은 아니다.”

작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작가의 권위는 줄어들고 있다. 작가가 제시하는 방향이나 방법에 시선을 주는 이들이 적다. 시대가 변했고, 가치관이 전도된 사회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진실을 전해줘야 한다. 작가는 시대의 감시자다.”
그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배가 부르면 글을 쓰는 데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종교처럼 생각하는 글을 위해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다. 그만큼 엄격하다. 하지만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 춘천에서 열린 시사콘서트가 끝난 후에도 쉬지 못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30명의 트위터 문학연수생과 모임을 가져서다. 20대 젊은이가 그를 “형, 오빠”라고 부르면서 환호했다.

이외수 약력

1946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
1965년 춘천교대 입학
1972년 춘천교대 중퇴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5년 <세대>지 중편으로 신인문학상 수상
1990년 나우갤러리 ‘4인의 에로틱 아트전’
1994년 신세계 미술관 ‘선화 개인전’
2006년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 입주
2008년 포항 포스코갤러리 ‘선화 개인전’
작품 : 소설 <꿈꾸는 식물>(1976), 소설 <칼>
(1982), 산문집 <말더듬이의 겨울수첩>(1986),
산문집 <감성사전>(1994), 소설 <괴물>(2002),
산문집 <하악하악>(2008) 외 다수


<화천|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