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소셜네트워크 활성화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 다양해져

‘소셜테이너’는 한국에만 있다. 영어 단어 소사이어티와 엔터테이너를 합성한 말이지만, 정작 영어권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소셜 엔터테이너’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뜻빛깔이 다르다. 신조어들이 대개 그러하듯 누가 처음 ‘소셜테이너’라는 말을 만들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이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얼추 파악할 수 있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을 무렵이다. 일부 연예인들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몇몇 언론이 이들을 ‘소셜테이너’라고 불렀다.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이라는 뜻이다.



김여진씨가 지난 4월 12일 마들경제연구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소셜테이너는 배우 김여진씨다. 그의 이름 앞에는 ‘개념찬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지난 1월 7일 블로그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장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그날 김씨는 밑반찬을 들고 홍익대학교 본관에 갔다. 가지고 간 반찬으로 홍익대학교 본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농성 중이던 이 학교 청소·경비노동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학생회장은 노동자들에게 “어머님들을 돕고 싶지만 학습권이 침해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이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지만 학생회장은 끝내 밥을 먹지 않았다.


‘개념찬 배우’ 김여진 최근 주목받아

이 무렵 홍대 총학생회는 언론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었다. 이날 밤 김씨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너희들을 그렇게 두려움에 떨게 하고, 아무것도 못 보게 하고, 언론의 화살을 다 맞게 하고, 어머님들이 주는 밥 한 끼 맘 편히 뜨지 못하게 하는 건 누굴까? …맘이 아팠다. 네가 자리를 뜬 후 목이 메더라. 그리고 많이 미안해졌다. 힘들다. 이제 그만 그 짐 내려놔라. 그리고 꼭 밥 한 번 먹자.”

김씨는 트위터로 부지런히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소식을 실어날랐고, 농성현장으로는 쌀과 반찬을 실어날랐으며, 트위터로 뜻을 모은 시민들과 함께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광고를 신문에 실었다. 지난 3월 24일에는 MBC <100분토론>에 패널로 출연했다. 가수 신해철씨, 개그맨 김제동씨 같은 소셜테이너들이 거쳐간 그 자리다.

소셜테이너라는 말은 새롭지만, 사회를 향해 발언하고 행동하는 연예인들의 계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홍성일 문화연대 운영위원의 말처럼 “정태춘, 안치환 등 이전부터 그런 이들이 많았다.”

정태춘씨는 1970년대 후반 데뷔 직후에는 서정을 노래했다. 1980년대를 거치며 노래에 시대를 담았다. 스스로 운동권 가수가 됐다. 쇼프로그램을 떠나 대학 노천극장과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범 직후에는 전교조를 지지하는 공연으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1990년 5집 앨범 <아, 대한민국>에 실린 ‘일어나라, 열사여’는 그가 1987년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보고 만든 노래다. <아, 대한민국>은 검열을 받지 않고 발매한 비합법 음반이었다. 비합법 음반 발매는 당시 음반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였다.

안치환씨는 독재 타도를 외쳤던 ‘386’ 세대의 문화적 아이콘이다.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철의 노동자’ 같은 대표적인 ‘운동권’ 노래가 그의 성대를 거쳐 세상에 나왔다. 한때 ‘내가 만일’로 대표되는 서정의 시기를 거치기도 했지만 민주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그의 반골 기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3년에는 청와대 앞에서 이라크 파병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2004년에는 반미 메시지를 표방한 음반 <외침>을 내놨다.

정태춘, 안치환, 윤도현으로 계보 이어져

지난해 10월 19일 김미화씨가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KBS ‘임원회의 결정사항’이란 문건을 들어보이 고 있다.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연예인들은 현 정부 들어 방송사의 프로그램 하차 및 출연 거부 요구 등 홍역을 앓았다.

집권정당이 보수진영에서 진보진영으로 교체된 이후에도 소셜테이너의 계보는 이어졌다. 개그맨 김미화씨는 2000년대 이후 연예인 사회참여의 모범으로 꼽힌다.
김씨는 1984년 KBS 공채 개그맨이 되면서 방송생활을 시작했다. 개그맨으로 전성기를 누리다 2000년 이후 사회참여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 추모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2003년에는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선언’에 참여했고, 이라크 파병 반대 1인 시위에도 동참했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과 TV 교양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방송활동의 외연도 사회성 짙은 분야로 이동했다.
비슷한 시기에 소셜테이너의 계보는 더욱 풍성해졌다. 신해철, 윤도현, 권해효, 김제동, 문소리씨 등 많은 연예인들이 사회참여활동을 지속했다.


문제는 “연예인의 사회참여를 정파적 차원에서 정치활동으로 간주하는 시각”(하재근 문화평론가)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과 보수단체는 이들을 ‘폴리테이너’로 규정했다.
<동아일보>는 2007년 7월 ‘정치하는 연예인 폴리테이너, 선거 후 엇갈리는 운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미화씨의 2002년 촛불집회 참여를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과 연관시켰다. 김씨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할 뜻을 밝혔다. 신문은 이후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소셜테이너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윤도현, 김제동, 김미화씨 등은 출연 중이던 방송프로그램에서 하차하거나 방송 출연을 거부당하거나 교체 압력을 받았다.

시민단체와 연계도 정당색채도 없어

김여진씨의 활동은 이런 흐름에서 상당히 벗어난 자리에 있다. 그의 사회참여활동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요소들은 지난해부터 폭발적으로 활성화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김여진씨는 지난 2007년 무렵부터 사회참여활동을 시작했다. 법륜 스님이 세운 기아 질병 문맹 퇴치 시민단체 JTS 사회공헌팀장으로 진작부터 봉사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것은 홍대 청소노동자 지원이다. 무엇이 달랐을까. 김씨는 트위터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트위터 공간에서는 유명인과 일반시민 사이의 정서적 거리가 오프라인 공간에 비해 훨씬 가깝다. 공인 대 사인이 아니라 개인 대 개인으로 접촉한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 교수(NGO학과)의 말처럼 “연예인과 일반시민들 사이의 직접적인 ‘스킨십’이 확대됐다.” 김여진씨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 평범한 개인들의 ‘놀이터’ 구실을 하는 트위터 공간에서 쉽사리 시민들과 연대했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을 호소한 조선일보 광고도 발상부터 광고 게재까지 6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김씨의 활동에는 정치적 구호도 없고 특정 정당의 색채도 배어 있지 않았다. 흔히 볼 수 있는 시민단체와의 연계도 없었다. JTS 활동 때와 달리 특정단체의 홍보대사로서가 아니라 개인 ‘김여진’의 자격으로 청소노동자들을 도왔다. 홍성일 운영위원은 “이전의 소셜테이너에 대해서는 조직, 단체, 정당과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선입관이 있었다. 김여진씨의 경우에는 그런 선입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진정성의 발로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연예인의 사회참여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홍성일 운영위원은 “소셜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소셜테이너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크게 넓어졌기 때문에 김여진씨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예상치 못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여진씨 인터뷰
“내가 좋아서 하는 일 행복하게 한다”


지난 4월 12일 오후 7시 30분 서울시 노원구 상계 3·4동 주민센터. 김여진씨는 이날 노회찬마들경제연구소 주최 강연회에서 지역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무조건 행복’이었다. 행복과 사회참여는 무슨 관계일까. 다음날인 4월 13일 오후 4시 김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 트위터가 많은 힘이 됐나.
“트위터의 힘이 컸다. 나도 놀랐다. 실시간으로 대화가 된다. 밖에서 따로 모여서 회의를 한다거나 할 필요도 없다.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도 자유롭다. 쉽게 접근해서 빨리 결정할 수 있다. 미니홈피나 블로그는 품이 많이 든다. 내가 쓴 건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트위터에서는 내가 한 말이 조금 지나면 사라진다. 그래서 마음이 가볍다.”

대학 재학 중에는 열렬한 운동권이었다. JTS 같은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했다. 트위터 기반의 운동과 비교한다면?
“새로운 운동방식이나 조직방식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조건 SNS를 활용하라고 말한다. 흔히 회의하고 찬반 의견을 모으는 게 민주적인 절차라고 하지만 상당히 복잡하다. 일이 더뎌지고 소통이 잘 안 되는 수가 많다. SNS는 조직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어떤 사안에 관심이 있으면 참여하면 된다. 조선일보 광고는 아이디어를 모으고 광고 시안을 만들고 광고를 게재하기까지 딱 6일 걸렸다. 시민단체 활동을 해봤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일한 경험이 없다. 혁명적이다. 사람들과 잘 호흡하고 소통하면서 어떤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좋은 틀이다.”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타인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에서 분노의 힘보다 공감의 힘이 더 크다고 보나.
“물론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칙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분노와 슬픔은 운동을 하는 주요한 동력이 된다. 그건 맞다. 하지만 분노와 슬픔만으로는 오래 가기 힘들다. 정리해고 같은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을 모으려면 함께 얘기하고 함께 가야 한다. 그것도 아주 긴 호흡으로 해야 한다. 명분 있는 일이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시민들과 함께 가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촛불집회도 촛불이라는 상징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힘이 있었던 거라고 본다. 운동이 변화와 진보를 위해 하는 것이라면 방식도 변화하고 진보해야 한다. 스마트폰과 SNS는 강력한 무기다.”

사회참여활동을 할 때 정해둔 원칙이 있다면?
“행복이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내게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생각한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다. 대신 끝까지 본다. 승패를 보겠다는 게 아니라 그 일의 끝을 보겠다는 거다. 실패하면 다시 연구하고 다시 해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가볍게, 조급하지 않게, 행복하게, 끝까지 하려 한다.”


<정원식·박송이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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