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나는 휴먼테이너다”

부담이 큰 인터뷰였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데다 그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듯이 화제가 되는 인기절정의 대중스타. 5초 안에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입담꾼. 권력도 두려워하는, 그래서 퇴출(또는 영입) 음모론에 늘 시달리는 파워 소셜테이너. 그러니까 새로운 내용을, 재미있게, 거기다가 ‘개념 차게’ 끌어내야 하는 3중의 부담감을 안았다.
그래도 감당할 만하다. 진짜 결정타는 그가 요즘 가장 뜨는 인터뷰어라는 것이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에서 소녀시대까지 이슈 인물을 인터뷰해서 엮은 그의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위즈덤경향)가 3개월 동안 15만부나 팔리고 있다. 인터뷰집이라면 1만부도 소화하기 어려운 국내 출판시장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런 특급 인터뷰어에게 빈약한 밑천을 드러내는 게 직업 인터뷰어로서 여간 기죽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7월 7일 서울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방송인 김제동을 만났다. 그제야 한 가지 간과한 것을 깨달았다. 그 역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할 말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속 시원히 다 말할 수도 없는 내면의 깊은 고민이 엿보였다. 그는 최근 언론과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고, 이번 인터뷰도 몇 차례의 사양과 연기 끝에 어렵게 응했다.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어 4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집이 단기간에 15만부가 팔린 것은 단지 유명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 작가 인터뷰입니까, 오늘.(웃음)”

한 수 배워볼까 해서요.
“(웃음) 에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가 다양한 분야, 다양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 대중이 공감할 수 있게 소통하는 데는 나름의 비법이 있을 듯하다.

“제가 듣고 싶은 답변보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답에 맞춰서 질문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 사람이 감추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굳이 파내지 않는 거죠. 그런 건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고 다만 확인하고 싶을 뿐인 게 대부분이거든요.”

질문지는 직접 작성합니까.
“기본적인 자료는 준비하지만 다 조사할 수는 없고요. 그분이 누구라는 정도만 알고 가죠. 진짜 모르는 게 있어야 진짜 물어볼 수 있잖아요. 예의가 아니겠지만 ‘제가 잘 모르는데, 누구시죠?’(웃음)라고 제가 알고 있는 수준 정도를 솔직히 고백해요. 그렇게 시작하고 저는 주로 듣는 역할에 치중합니다.”
그는 토크콘서트 무대도 대본 없이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기실 일정표에도 김제동 등장, 김제동 이야기, 마무리, 이렇게 딱 세 항목만 적을 정도다. 단지 타고난 재기와 순발력만으로 3시간 동안 사람들의 배꼽을 얼얼하게 하고, 수많은 ‘어록’을 쏟아내고, 깊은 공감까지 자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풍부한 독서, 치열한 삶의 경험, 진지한 내면 성찰 등이 뒷받침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누구입니까.
“아무래도 고현정씨죠. 어느 분 하나 놓칠 분 없지만 현정이 누나와는 그 전날 밤새도록 같이 술 마시고 아침에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인터뷰했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네요.”

친하게 지내던 분과 인터뷰라는 특별한 시공간에서 다시 만났을 때 전혀 새로운 느낌이던가요.
“네, 굉장히 새롭죠. 술 먹을 때의 현정이 누나와 전혀 다르니까요. 사람들은 그런 사이의 간극 때문에 고민하잖아요. 가장으로서의 나, 회사에 왔을 때의 나, 어떤 게 진짜 나인가. 저 같은 경우 야동을 보고 있을 때의 저,(웃음)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때의 저, 방송인으로서의 저, 사람들한테 웃음을 주려고 하는 저… 저는 정말로 제 인생 끝까지의 목표는 사람들을 웃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웃을 때 저는 가장 행복하거든요.”

홍희인간(弘喜人間), 널리 인간을 웃기게 하자. 웃음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그의 직업정신이자 삶의 철학이다.

‘웃음의 혁명가’라고도 불리는데, 웃음을 통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너무 그렇게 자꾸 무겁게 가는 것이…(불만이라는 듯) 저는 흔히 말하는 진보언론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 봐주면 좋겠어요. 제가 아는 것이 웃음에 관한 것이고 17년 가까이 제 인생을 투자했던 부분이잖아요. 한눈 팔 수가 없습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요. 등록금 투쟁에 관해서도 대학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놓은 곳에다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진짜 포퓰리즘은 무엇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 논쟁하자고 하면 전 모릅니다. 저는 다만 등록금이 비싸다는 것만 압니다. 그걸 낮춰달라고 시위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웃으면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웃는 건 불법이 아니잖아요. 웃음만큼 큰 혁명은 없습니다. 모든 혁명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웃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요.”

얘기가 나온 김에 등록금 집회에 등록금 내는 당사자로서 갔습니까, 아니면 요즘 말하는 소셜테이너로서 간 겁니까.
“저는 일단 소셜테이너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타인이, 또는 사회가 저한테 붙여준 이름이죠. 저는 그 이름 받아들인 적 없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굳이 대답하자면 소셜테이너, 등록금 내는 대학생, 조카 등록금 댔던 삼촌, 다 해당될 수 있죠.”

그렇다면 왜, 어떤 생각으로 갔습니까.
“흔히 말하는 잣대로 나름 성공한 30대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입니다. 저는 등록금이 얼마가 되든 졸업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주위의 대학생이나 대학에 다니지 않는 20대, 지금 너무 힘듭니다. 함께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등록금 얘기가 계속되자 차츰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걷혔다.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고 웃음 대신 감성과 요즘 흔히 말하는 ‘개념’으로 충만해졌다.

“어제 이철수 선생님 판화전에 다녀왔어요. 거기 판화 중에 부부가 길을 걸으면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따라오는데 바람이 여간하지 않네요.’ 이런 느낌의 문장으로 기억해요. ‘괜찮아, 애들 아직 젊은데 뭐.’ 아빠의 대답이죠. 이 두 문장이 등록금 집회에 나간 저의 이중적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미안하죠. 바람이 심상치 않고 여간하지 않거든요. 그 다음은 믿음이 있습니다. 괜찮다, 아직 젊으니까. 이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니들 젊다, 그러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 이런 논리는 안 됩니다. 각각의 삶의 모습이 다른데 어떤 높은 분처럼 나도 가난했어, 해봐서 알아,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해,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약 올리는 것밖에 안 됩니다. 그것부터 먼저 얘기하면 안 되죠. ‘미안하다’가 먼저라야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비판자들은 소셜테이너가 사회 현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포퓰리즘을 추구한다고 합니다만….
“제가 등록금 집회에 나가니까 그럼 세금은 어떻게 할 거냐, 세금 배분을 어떻게 할 거냐, 대학에만 돈 쏟아부으면 어떻게 할 거냐 등등의 얘기를 하죠. 그걸 알면 제가 여기 있겠습니까. 정책 내고 건의하겠죠.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 ‘왕이 왕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내가 어찌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느냐’며 귀양 가지 않습니까. 공길에게 어떻게 하면 왕이 왕답고 신하가 신하다운 거냐, 어떻게 해야 네가 밥을 먹을 거냐고 힐난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공길은 문제제기를 한 거죠. 그것도 웃기고 풍자하면서… 그 역할로 끝입니다. 대안은 전문가 집단이 내야 합니다. 왜 저한테 묻습니까.”

불법시위에 가서 선동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불법이라고 하면 하지 말자고 합니다. 책 읽자, 그런 거 하자, 대통령님 욕하지 마라, ‘엠비 아웃(MB out)’ 안 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다, ‘총장 아웃’하고 다르다, ‘엠비 인(MB in)’하자, 원래 당신의 공약이었으니까 꼭 지키도록 너희들이 힘 보태라, 대통령님 힘 내십시오, 이렇게 하라고 하죠. 청와대 정무수석이 다녀간 집회를 어떻게 불법시위라고 할 수 있나요.”

젊은 층에 영향력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요즘 인기절정이라 인터넷을 검색하니까 김제동초등학교도 나오더군요.(조크를 던진 것이다)
“예, 효리마을도 있어요.(웃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광팬이 많아지면 안티팬도 생기잖습니까. 이슈 좇아 얼굴 알리기 하는 것 아니냐, 정치하는 것 아니냐, 심지어는 ‘좌빨’ 아니냐, 이런 얘기 접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겁납니다. 어떤 사람이 저를 그렇게 극렬하게 미워한다… 기분 좋을 수 없죠. 절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김제동초등학교? 제가 지은 거라면 믿습니다. 지나가다 얼핏 보면 오해할 수 있죠. 조목조목 반박하며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나름의 논리로 또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목 끌고 싶어서? ‘나 가수’로 충분히 끌었습니다. 정치하려고? 그건 질문 자체가 이상합니다. 이미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숨 쉬는 것 자체도 정치니까요.”

그는 조선시대 남사당패가 양반 조롱하고 왕을 비방하는 벽서를 붙인 사건을 들면서 자신에게 덧씌워지는 색깔론에도 강하게 항변했다.

“신하들이 잡아들이자 했을 때 왕이 말했습니다. 과인의 잘못이고 과인이 잘하면 벽서는 없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조실록에 나오죠. 그 시대에도 비판세력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비판세력이 없는 게 좌빨 아닙니까. 일본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말했죠. ‘진짜 국회의원은 일본에 한 명도 없다’고.
애들의 개성이 다 다양한데 모두 꿈꾸면 이룰 수 있다는 교육 자체가 다 사기 아니냐,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좌빨이고, 선동이고, 소셜테이너입니다. 이제 폴리테이너로 나선다고 하겠죠. 저는 그런 거 모릅니다. 굳이 영어로 갖다 붙인다면 휴먼테이너일 뿐입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제 원래의 일이자 가장 큰 희망이고 꿈이니까요.”

그의 소통철학은 인터뷰어로서 기본자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말없이 들어주는 것이다. 등록금 집회에 나간 것도 그런 맥락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 제발 우리 얘기를 좀 들어 달라, 얘기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고, 그런 요구를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귀 기울여 들을 때 비로소 소통이 이뤄지고 문제 해결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신들이 왜 위대한지 압니까. 아무 말 없이 들어주니까요. 소주병이 왜 위대하냐, 아무 말 없이 들어주잖아요.(웃음)”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할 것이냐를 놓고 개인적 갈등은 없었습니까.
“어떤 위치에 올라서 아무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오해를 살 일도 없고 편합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운이 좋았고 도와준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해서 된 것도 있지만 그건 얼마 안 될 겁니다. 치열하게 6개월 정도 고민했습니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 약자의 편을 드는 것이 가식은 아닌가, 약자 편에 서서 강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은 아닌가…
깊이 점검해보니 그런 점이 없지 않습니다. 소신 있다, 개념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반대로 잃는 것도 더 많습니다. 49대 51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니까 제가 가진 힘이나 부는 원래 제 것이 아니니까 있는 자리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거창한 뜻 말고 미안함, 채무감 같은 게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욕먹더라도 후자를 택하면 양심적으로 편안해지겠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질문의 요지는 이제 인터뷰가 끝났다, 마무리를 해달라는 거죠.(웃음) 단기적인 계획은, 외롭다…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고요. 혼자 살고 늘 대중에게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더라도 ‘사람 김제동’으로서가 아니라 저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 늘 거기에 부응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제 솔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좀 방전됐습니다. 충전이 필요한 거죠. 다시 말하면 위로받고 싶습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위로받고 충전되면 제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사람 말이죠. 저랑 인터뷰하는 게 재미없죠. 웃길 줄 알았는데 별로 웃기지 않으니까….”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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