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주인공 못지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작가 공지영, 딴지그룹 총수 김어준, 그리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국이다.
 박원순 후보의 승리는 트위터에 ‘투표인증샷’을 올리며 젊은층의 투표 참여를 독려한 이들의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세 명의 공통점은 온라인 소통에 능하다는 것 말고도 최근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라는 점일 것이다. ‘도가니 열풍’과 ‘나꼼수 신드롬’, 그리고 ‘조국 현상’이 그런 사회적 표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조국 현상’은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뚜렷하게 보이지도 않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어떤 때는 표면에서, 어떤 때는 이면에서 지속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그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기약없이 ‘잠수’하겠다고 했다. 6개월여 동안 피하던 조 교수를 막다른 골목에 세운 것은 장충체육관 이벤트였다. 지난 10월 6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와 마주했다.

-지난해 <진보집권플랜>을 내고 난 뒤에 ‘조국 현상’이라는 말이….
 “(말을 끊으며) 현상이라고 하면 ‘안철수 현상’이지, ‘조국 현상’은 아닙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책을 냈잖아요. <조국 현상을 말한다>라고… 지금은 꺼졌지만 이름 뒤에 ‘현상’이라는 말이 붙은 건 조 교수께서 대한민국 원조 격인데….
 “당연히 꺼져야지요.”
 
-왜 그렇습니까.
 “저는 <진보집권플랜> 전후부터 의도적으로 (정치를) 안 한다, 다른 일을 한다고 얘기하고 몸을 움직인 것이잖아요. 조건절도 안 붙이고 애매모호한 말꼬리도 안 달죠. 김어준 딴지 총수가 쓴 <닥치고 정치>라는 책을 봤더니 앞부분에 제 얘기부터 시작했더라고요. 조국을 내세워 뭘 해보려고 했는데, 이 친구가 안 할 것 같다, 아 화난다, 그러면서 충고하고 비판하면서 넘어가더군요. 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인데, 저에 대한 분석이 재미있더라고요.”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과학대학원장이 ‘절대라고 절대 말하지 말라’(Never say never)고 했듯이 나중의 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안철수 원장은 원래부터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분이기 때문에 저하고 비교하면 안 되죠. 저는 그분과는 움직이는 동력이라든가 관점, 정확히 얘기해서 문법이 다릅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저는 평생 교수이고 안 원장은 지금은 교수지만 사업가였지 않습니까.(웃음) 물론 지향하는 바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부분은 겹칠 수 있겠죠. 안 원장은 안철수연구소를 만들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청춘콘서트도 하고 그랬잖아요. 저는 ‘1987년 체제’를 만든 이른바 진보개혁진영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요. 입장이나 활동방식에서 차이가 있는 거죠. 안 원장은 대선주자급이고 저는 관악골 훈장인데,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얘기는 이번 인터뷰와 관계가 없는데 왜 자꾸 하는 거죠?”

 조 교수는 대화가 자꾸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 진행되자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관계있습니다”라고 대꾸했다. ‘조국 현상’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고 지금도 작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기 때문에 한 번쯤 정리를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쨌든 ‘조국 현상’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터인데 본인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조국 현상을 말한다>는 책도 나왔고, 또 제가 자칭한 건 아닌데 불러버려서 그렇게 돼버린 ‘강남좌파’라는 호칭도 있잖습니까. 그게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진보개혁진영에 대해서 대중이 요구하는 바가 일정하게 저를 통해서 투영된 거라고 봅니다. 그동안 1980년대 운동권의 모습, 이것만으로는 정권 창출이나 유지, 국정운영 등등이 좀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국가보안법 전과자이기도 하고 진보 얘기도 하니까 진보개혁진영 사람은 맞는데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걸 포착한 것이겠죠.”

 ‘뭔가 다른 것’은 진보의 유연화 내지 개방화가 아니겠느냐는 게 조 교수의 분석이다. 강남좌파니 조국 현상이니 하는 말 속에는 진보가 어떻게 확장되고 유연화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회의 범진보진영이 어떻게 했으면 좋을 것이라는 희망사항이 조 교수라는 한 개인을 통해 인격화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조국 현상은 꺼져야 마땅한 게 아니라 오히려 널리 퍼져야겠군요.
 “그 점에서는 당연히 퍼져야죠. 조국 현상이라는 의미가 조국 개인이 2012년에 출마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꺼져야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정치적 결벽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정치에 관여하려고 하죠. 다만 기존 정당정치가 개편되고 발전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다른 정치의 문법을 써보려는 겁니다. 예컨대 이번 장충체육관 경선은 박원순이라는 개인을 통해 새로운 정치문법이 작동된 거죠. 박원순 후보를 통해서 새로운 정치를 해보려는 여러 사람의 노력과 문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중에 하나로 제가 있는 겁니다.”  

-굳이 박원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까닭이 뭡니까.
 “바꿔보려고요.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박 변호사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참여연대 이후부터 활동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다는 개인적 신뢰가 있는 것이죠. 두 번째는 더 중요한 것인데, 진보개혁진영이 내년 4월과 12월을 대비하면서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참 훌륭한 분이지만 그분이 후보가 되면 내년 이후 (범야권이) 민주당 플러스 알파로 재편될 가능성이 큽니다. 수권통합정당의 외연 자체가 좁아진다고 보는 것이죠.”

-그렇다면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에 입당해서는 안 되겠군요.
 “민주당을 위해서도, (야권) 전체를 위해서도 안 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내년 4월 전까지 자유롭게 해줘서 박원순 지지세를 강고하게 만든 다음에 민주당과 크게 합치는 수순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건 전혀 아니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주당을 빼고 집권과 국정을 논할 수 없다고 저는 봅니다. 민주당 및 민주당으로 묶여 있는 세력과 지지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 여전히 크고 소중합니다. 다만 두 번째로 똑같이 중요한 게 뭐냐면 민주당만으로 집권이 되느냐… 그 또한 아니라고 보는 거죠. 이런 정치적 과도기적 상황에서 ‘박원순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장충체육관에서 무엇을 봤습니까.
 “가장 눈에 띈 것이 민주당이 모시고 온 분들은 거의가 50대 이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거기 나온 젊은 분들은 당원이 아니었습니다. 민주당의 지역적·연령별 포괄 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거죠. 이걸 무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것 없이는 안 되지만 이것만으로도 안 되는, 거듭 얘기하지만 민주당 없이는 안 되지만 민주당만으로도 안 되는 지금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시민사회 진영이 제도정치권을 이긴 사상 초유의 사건은 세 가지 ‘현상’이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원장의 인기가 바람을 일으켰고, 박 후보의 탄탄한 콘텐츠가 그 지지율을 지켜냈으며, 조 교수의 참여가 지지율을 표로 연결시켰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가 받은 8276표는 조 교수의 지지 선언과 투표인증샷 놀이에서 확산된 또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박 후보로 단일화된 과정을 분석하면 안철수 현상이 단초를 제공하고 박원순 현상으로 구체화되어 조국 현상으로 완성됐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람이라는 건 잘 모아서 풍력발전기를 돌리고 전기를 생산해야 원래의 목적을 이루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작은 풍력발전기 역할을 한 겁니다. 남은 문제는 더 큰 풍력발전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야구로 치면 한국시리즈가 끝난 거죠. 이제 전 구단이 힘을 모아 한·일전에 대비해야 하잖아요. 박영선 의원은 훌륭한 정치인이고 저와 사적 인연도 있습니다. 이번에 졌다고 해서 상처를 입은 게 아니라 더 큰 정치인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나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도 있겠지만 두 후보를 같은 편으로 인식한 것도 경선 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슈퍼스타K’와 같은 서바이벌 경연이 아니라 ‘나는 가수다’와 같은 ‘행복한 선택’이었다고 말입니다. 두 후보가 고향(경남 창녕)과 이니셜(PYS)이 같아서 헷갈렸다는 우스개도 있었듯이…(웃음)
 “민주당 지지자는 물론 당원 중에서도 박원순 후보를 찍은 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본선 승리나 개혁진보진영의 미래를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하신 분이 있을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광주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힘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 점에서는 범야권의 집단지성이 발휘된 것일 수 있겠죠. 정당정치의 실종은 그 자체로는 맞지만 그것은 일면만 보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번 경선이 단순히 민주당의 패배라고만 할 수는 없는 거죠.”

 조국 현상에 대해 얘기할 게 또 하나 남아 있다. 약 1년 전 야권은 패배감에 빠져 있었다. 6·2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박근혜 대세론’에 대적할 주자를 찾기 어려웠다. 조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이 나올 때의 얘기다. 그보다 7개월쯤 뒤에 나온 <조국 현상을 말한다>조차 야권은 2012년보다 2017년 집권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정도였다. 

-조국 현상의 또 하나 숨겨진 포인트는 무력감에 빠진 개혁진보진영에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 아닐까요. <진보집권플랜> 이후 4·27 재·보선으로 한나라당을 패퇴시키고 10·3 경선으로 민주당까지 제압하면서 개혁진보진영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는데요.
 “지난해 <진보집권플랜>을 준비할 때는 다 안 되는 것이었어요. 당연히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된다는 거였죠. 진보진영 전체에 비관과 절망과 냉소가 팽배했어요. 이거 안 되겠다고 해서 책을 낸 것이고, 실제로 그 뒤에 분위기가 좋아졌습니다. 물론 제 책 때문이라고는 보지 않고요. 제가 그런 대중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을 하죠.”

 조 교수의 책에 자극을 받아 여러 책과 이벤트가 쏟아졌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운명>과 김어준 딴지 총수의 <닥치고 정치>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 유행하는 전국 순회 ‘북콘서트’도 그가 <진보집권플랜>을 내면서 처음 시도한 것이다. 

 “학벌 좋고 서울대 교수인 친구가 진보 이야기를 하니까 호기심이 있을 것이고 비웃음도 있을 것이고 온갖 이중적 감정이 있겠죠. 저자가 나서서 설레발을 치는데, 처음에는 비판도 하고 야유도 하다가 ‘그러면 난 뭘 해야 돼’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겁니다. 저한테 모였다는 게 아니라 군사적 개념을 쓰면 전선으로 모이기 시작한 거죠. 그 가운데서 몇 번의 작은 전투에서 이기니까 자신감도 생긴 것이고요.”

-공교롭게 조 교수를 비롯해 최근 ‘현상’의 진원지가 모두 PK(부산·경남) 출신입니다. 트위터에 부산국제영화제와 희망버스를 언급하면서 ‘내가 만약 부산시장이라면…’이라고 한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요.
 “그건 엉뚱한 얘기고요. 부산에서 진보적인 사람은 살기 어렵습니다. 요즘 얘기되는 사람은 문재인 이사장을 빼고는 다 출향인사죠. PK가 지금 중요한 것은 지역주의를 깰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고 시기라는 데 있습니다. 내년 4월 PK에서 3분의 1 의석만 확보하면 전국 판세가 달라지고 정치구도가 확 바뀔 것입니다. 제 친구나 선후배 가운데 정치적 근육이 발달한 분한테 많이 내려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이 내려가고 있고요.”

-스스로는 정치근육이 없다며 정치와 선을 긋고 있는데….
 “제가 몸부터 ‘슬림’하지 않습니까.(웃음) 저의 활동에 대하여 ‘입진보다’ ‘얼굴마담이다’ 등의 비난과 야유가 있습니다. 저는 그러죠. ‘입이라도 진보라고 불러서 감사합니다’ ‘얼굴이라도 진보라고 해서 감사합니다’라고요. 이렇게 받아넘긴다는 점에서 정치근육은 있지요. 그러나 진정한 정치근육은 글을 쓰고 말을 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오직 선거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조 교수는 2012년이야말로 진보개혁진영이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는 역사상 첫 기회라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1987년 체제, 경제적으로 199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면 개혁진보진영이 2013년부터 최소한 3연속 집권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진보집권의 비전이다. 이제 좀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조국(祖國)의 미래는 진보개혁에 있고, 조국(曺國)은 전선에 바로 붙어 있는 ‘보병’이 조금 떨어져 포를 쏘는 ‘포병’으로 참여한다는 것, 그게 ‘조국 현상’의 처음과 끝인 듯하다.

Posted by 주간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