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방송을 보다가 닭살 돋는 일이 많아서 피부 관리 차원에서 KBS를 끊은 지 꽤 됐다. 그런데 듣자 하니 보지도 않는 이 방송의 시청료를 올릴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시청해 주는 대가로 거꾸로 시청료를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방송을 보지도 못할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감히 시청료를 올려 받겠다니 참으로 낯이 두꺼운 분들이다.

그동안 KBS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이병순 사장 이후 KBS에서는 비판적 보도가 점점 사라져 갔다.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김인규 사장 아래서는 아예 낯 뜨겁게 ‘MB(이명박)어천가’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기자 시절 전두환 밑에서 하던 아부를 사장이 되어 전사적으로 실천하는 셈이다. 공정보도를 하려는 이들은 현장에서 쫓겨나고, 정권에 밉보인 사람들은 비정치적인 오락 프로그램에서까지 줄줄이 하차시켰다.

결과는 보는 대로다. 정연주 사장 시절 줄곧 공신력 1위를 지켜 오던 KBS가 지난해 여론조사에서는 신뢰도가 13% 빠지면서 1위 자리를 MBC에 내주었다. 시사프로만이 아니다. 드라마 아이디어도 요즘은 윗분들이 내려주시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생 때 보던 <전우>도 부활한단다. 제품의 질이 떨어지면 가격을 내리는 것이 당연한 일. 그런데 청부사장에 이어 MB특보를 사장에 앉혀 제품의 질을 잔뜩 떨어뜨려 놓고는 가격은 무려 100% 이상 인상하겠단다.

시청료가 묶인 것은 KBS가 과거에 저지른 오류 때문이다. 권력에 아부하는 방송에 국민이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후유증 때문에 KBS가 매체 가운데 신뢰도 1위 자리를 지키던 시절에도 감히 시청료를 올려 달라고 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굳이 시청료를 올려야 한다면 먼저 방송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KBS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정권 찬양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어떤 때는 마치 북조선 방송을 보는 것 같다.

이병순 사장이 ‘KBS 경영을 흑자로 돌려놓았노라’고 자랑하고 다니던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러니 경영난 때문에 시청료를 올리자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시청료를 올리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게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얼마 전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면 7000억∼8000억원 규모의 광고가 민간시장으로 이전되는 효과를 낼 것이며, 이는 미디어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시청자로부터 요금을 올려 받아 KBS에서 광고 비중을 줄이고, 그렇게 뱉어낸 광고 물량을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종편에 나눠 주겠다’는 것이다. 더 쉬운 말로 압축하면 ‘시청자들의 주머니에서 7000억~8000억원을 합법적으로 뜯어내서 그 돈을 고스란히 조·중·동 종편에 넘겨주겠다’는 얘기다.

미디어법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선전하더니 현실은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광고시장은 제한돼 있는데 밥상에 숟가락을 더 올려놓는다고 저절로 밥이 늘어나지 않으니 KBS의 몫을 떼서라도 그쪽에 갖다 줄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 사정이고 왜 내가 원하지 않는 정권 홍보방송을 보는 대가로 더 많은 시청료를 내야 하고, 그 돈으로 조·중·동 방송을 먹여 살려야 하는 걸까.

시민단체에서는 KBS가 시청료를 인상하면 곧바로 납부거부 운동을 벌일 거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박원순 변호사 역시 블로그에 “동의한다면 공동행동을 취할 것을 요청드린다”고 썼다. 당연히 거기에 참여할 생각이다.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며, 따라서 공동행동을 취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거창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시사평론가> 

Posted by 주간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