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지난 9월 2째주 주간경향 추석특집호에 실렸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만난 김영훈 위원장 / 김석구 기자


"노동자 정당 발전이 역사의 진보"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43)은 상복을 입은 채로 기자를 만났다. “사실 상주라서 계속 있어야 하는데”라며 운을 뗀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 들어 큰 어르신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세 번 장례위원장을 맡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말한 ‘큰 어르신들’은 지난해 12월 세상을 뜬 진보적 지식인의 대명사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올해 5월 사망한 정광훈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그리고 9월 3일 타계한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 여사다.
 1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진보정치의 중심에 ‘노동’이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복지’에 대해서도 ‘노동 중심의 복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소선 여사는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셨다. 민주노총의 대표자이자 상주로서 느낌이 남다를 것 같은데.
 이소선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팍팍한 현실에서 누굴 의지하고 살아야 하나. 이소선 어머님은 1995년 민주노총 합법화 시절 “죽은 태일이가 살아온 것처럼 기쁘다”고 하셨던 분이다. 나 뿐 아니라 민주노총 전체가 어머님으로 여기는 분이셨다.
 지난해는 전태일 열사 40주기였다. 청계천 버들다리를 ‘전태일다리’로 명명하는 사업, 전태일 평전읽기 사업 등을 진행했는데 어머님께서 애를 참 많이 쓰셨다. 2만5000부가 넘게 팔린 전태일 평전 사업을 특히 좋아하셨다. 전태일 40주기 사업이 끝나고 나서 어머님께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민주노총 스스로는 ‘전태일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동안 민주노총이 한쪽에선 이빨빠진 호랑이다, 다른 쪽에선 너무 과격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출범 때의 열정이 관성화되면서 쌍용차 사태와 같은 비극도 막아내지 못했다.
 지난해 한 언론에서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 의식조사를 했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민주노총이 모든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냐는 질문에는 35%만이 긍정적인 답을 했다. 이 결과에 실망하는 조합원들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비관할 수치는 아니라고 본다. 아직 민노총에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 3분의 1을 넘는다는 것 아닌가. 민주노총에 대한 긍정 의견을 점차 높여가는 사업을 하겠다.

현재 노동계의 최대 이슈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다. 정리해고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금 희망버스로 대변되고 있는 한진중공업 문제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의 관계를 보여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김대중-노무현 정권를 거치면서 정리해고법이 도입되고 아웃소싱이 확산됐다. 정리해고법 도입 초기에 제때 막아내지 못한 결과 사측이 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일이 반복됐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게 된 것 역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화를 막지 못한데 대한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선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얘기해 왔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핵심이 뭔가.
 무엇보다 ‘노동 중심의 복지’가 필요하다. 현재 진보나 보수나 다들 복지를 얘기하는데 노동이 빠진 복지는 거짓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복지 예산이 늘어나고 4대보험이 사회적으로 확립되는 등 제도가 정비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 유연화로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추진된 복지는 결국 양극화를 심화시키지 않았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4대보험의 사각지대에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의 복지에서도 배제된다. 노동 현장에서의 1차 분배가 정의롭지 않은데 2차 분배만으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 노동 현장에서부터 사회적 재분배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게 최고의 복지다. 
 노동 중심의 복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두 바퀴가 잘 굴러가야 한다. 하나는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 조직들의 대중 활동이다. 노동 중심의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둘째는 노동자 정당을 통해 구체적인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시민의 다수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정당을 발전시키는 것이 역사의 진보다. 서유럽 복지국가의 기틀은 모두 노동자 정당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시민들이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크지 않나.
 홍세화씨가 ‘존재를 부정하는 의식’이란 말을 했다. 노동조합 운동의 전통이 오래된 서유럽에선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시민들이 지지한다. 그들의 이익이 나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복지제도의 형성 과정에서 노조의 역할이 적었다. 거기에 시민과 노동자들을 가르려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자본가들의 시도가 있었다.
 시민과 노동자가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연대의식을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공공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민영화 반대와 같은 사회적 의제들을 확장시키면서 노동자의 기본권 확장이 일반 시민들의 권리와 이익에 부합한다는 진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가야 한다.

안철수 열풍도 결국 시민들이 노동자 정치에 대해 일체감을 가지지 못해 생겨난 현상 아닌가. 안철수 열풍 대신 노동자 정치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지적에 100% 동감한다. 진보정치가 분발해서 한나라당, 민주당이라는 보수 양당이 아닌 새로운 정치세력 등장에 갈망하는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안철수 열풍의 경우 이미지 뿐만 아니라 컨텐츠와 철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조직이 받춰지지 않으면 신기루처럼 솟았다가도 사라질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진보대통합 얘기로 넘어가보자.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진보 양당의 통합이 최종 무산됐다. 민주노총의 향후 방침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노총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분열된 진보정치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일을 일관되게 해나갈 것이다. 진보양당의 신설합당 방식이 부결됐지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여 대중조직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진보통합을 추진할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이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동당의 경우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논의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같은 생각인가
 우리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창당한 이후에 그 당에서 참여당에 관해 논의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는 애초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신당과 통합이 되지 않았다고 참여당과의 통합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

1968년 부산 출신인 김영훈 위원장은 1992년 부산지방철도청에 기관사로 입사했다. 2004년엔 철도노조 18대 위원장을 지냈으며, 2007년엔 전국운수산업노조 초대위원장을 지냈다.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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