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정법영씨의 동료이자 정진동 목사의 제자인 김창규 목사(58)를 청주시청 앞에서 만났습니다. 김 목사는 대형마트 입점을 반대하며 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 목사는 1970년대 부터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자, 빈민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 왔습니다. 현재 김 목사는 청주시비하동유통업무지구저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청주에 들어설 대형 유통단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법영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를 참조하세요 (-> 2012년 오늘 '의문사 망령'은 살아있다(주간경향 991호))


기자 : 정법영씨와의 관계는 어떠셨나요 

김창규 : 법영이가 저에게 형이라고 했죠. 그때(1978년) 제 나이가 25세 대학생이었어요. 법영이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가끔 저와 길을 걸으면서 교회에서 집회 끝나고 난 뒤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자기도 아버지(편집자주 : 정진동 목사)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겠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말도 했죠. 아주 순수하고 의로운 청년이었어요. 그런 청년이 아버지가 겪고 민중이 겪는 고통을 두고볼 수가 없었던 거죠

문 : 정법영씨와 정진동 목사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가 1970년대인데요, 정법영씨 사건과 비슷한 시기의 장준하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은 수면으로 떠올랐습니다.

답 : 이사람 사건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어요. 수사관들이 진술을 거부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때당시 있었던 형사들, 이사람들이 증언을 해줘야 합니다. 경xx란 사람은 죽었고 마xx은 아직 살아있어요. 이 두 사람이 증언을 해줘야 하는데.. 사건 당시 법영이가 건강했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이죠

문 : 농약 같은 것을 먹은건가요?

답 : 그렇게 추정되는 것을 먹고 죽은 것이죠

문 : 의문사위 조사결과를 보면 경찰 측에서 정법영씨에 대한 회유가 있었고 그런 과정 중에 정법영씨가 사망한 것인데, 사실 당시 청주에서 반유신 투쟁을 하던 것은 정진동 목사셨죠. 경찰에서 정진동 목사가 아니라 굳이 그 아들을 의문사시킬 이유가 있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도 있는데요

답 : 그건 박정희 정권이 정진동 목사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봅니다. 당시 정 목사가 선교회에서 단식농성중이었고 그 큰아들이 열심히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제가 그때 부활절 때 법영이랑 같이 유인물을 뿌렸고, 정 목사님 일도 돕고. 법영이는 그렇게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도운 의로운 청년이었죠.

정법영이 죽게 된 동기는 유신체제 하에서 인권운동, 노동자와 빈민, 민중들을 위해 일하는 정진동 목사의 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해서죠. 정 목사가 활동을 계속하면 자기들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가 경고를 한 것을 아들을 죽여서 한 것으로 봅니다. 있을 수 없는 비열한 짓이죠.

문 : 일단 조사 결과는 공권력의 압박에 의한 자살이라고 나오는데요.

답 : 자살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 : 장준하 사건을 보면 의문사 당한 것은 본인이지 아들이 아니잖아요?

답 : 나도 그게 처음엔 이해가 안됐어요. 제가 그 이후에도 정 목사님과 40년 가까이를 같이 활동을 했어요. 정 목사가 어떤 분이냐면 엄청나게 체제에 저항한 산업선교 1세대입니다. 이 분이 반정부 발언도 많이 하고, 노동자 문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이곳 청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 알리는 강연을 하러 다녔어요. 집회가 불허된 유신 체제에서 집회를 강행하고 단식농성을 하셨죠. 그때 어떤 분이 내려와서 설교를 같이 했는데 그분이 새누리당 쪽에 있는 인명진 목사라는 분이 있어요.

문 : 인 목사도 청주에서 활동하셨나?

답 : 그때 이리 와서 같이 활동했죠. 그 사람이 성경 말씀을 읽은 적이 있어요. 미가 선지자 이야기를 읽었다고 해서 구속된 적이 있죠. 그 뿐만 아니라 함석헌 할아버지 등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고은 선생도 와서 시국강연도 하고, 찾아와서 농성자들을 격려하는 말씀도 해주셨죠. 말하자면 충북지역에서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정진동 목사 교회인 산업선교회에 모이게 된 것이죠.

문 : 정법영씨 사망 당시 상황을 좀더 듣고 싶은데요.

답 : 1978년 7월 5일 정법영이 병원에서 혼수상태에서 한 말이 "이새끼들아 물러가라! 맥주나 처먹어라 나는 안먹어! 개xx들!" 이 말을 반복해서 했어요. 이게 뭔가를 마신 것이죠 정체불명의 사람들과. 6월 29일에 혼미상태에서 정법영이 아버지에게 한 말이 기록돼 있고 이런 것을 보면 자살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문 : 의문사위 조사 결과를 보면 경찰이 계속 협박을 하고, 정법영에게 접근을 해서 정보를 알아내려고 한다는데요

답 : 그게 사찰이죠

문 : 그렇게 자살할 정도로 심한 사찰이었나요

답 : 나도 그게 의문이에요. 자살할 이유는 없었어요. 저는 (의문사위) 기록한 사람이 잘못 기록했다고 봐요. 교회에서 정법영군에 관한 책을 내가 30년 넘게 가지고 다녀요. 이 책에 나온 내용이나 제가 봤던 경험을 보면 이 사람은 분명 타의에 의해 죽은 것이지 자살은 아니에요

문 : 그리고 농약으로 추정되는 물질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농약을 먹으면 며칠간 병원에서 괴로워하다 죽는게 맞나요.

답 : 농약이면 이게 위세척하면 살 수 있죠. 농약으로 보이는 것을 마셔서 죽었다는 것은 조사관이 쓴 것이고요. 당시 의사들은 뭘 먹었는지 알았겠죠. 의사들이 밝혀내질 않으니..

문 : 의문사위 보고서를 보면 의사들이 기억을 못한다고 하는데요.

답 : 그렇게 말을 했죠. 그리고 몇년 전에 아버지(정진동 목사)도 죽었어요. 518 망월동 묘지에 묻혔죠. 가족들로 봐서는 큰아들과 아버지가 죽은 것이죠. 정법영이 일은 박정희 시대의 또하나의 억울한 죽음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저는 봐요.

문 : 다른 의문사 사건과도 유사하다고 보시는 건가요

답 : 장준하 사건이나 인혁당하고 비슷한 사건이죠. 인혁당은 재판에 의해 20시간도 안돼서 도예종 등을 교수형시킨 거잖아요. 정법영 일도 약물로 해서 그렇게 된 것이고, 자살로 잘못 알려졌다고 저는 봐요.

문 : 의문사위 보고서를 보면 정진동 목사에 대한 감시가 많았다고 하는데 어떤 상황이었나요

답 : 저도 한 17년 정도 제 집 앞에 형사들이 서 있었어요. 형사들이 24시간 교대로 감시하는 거죠. 보고서에는 교회에서도 감시했다고 하죠? 그렇다고 하죠

문 : 보고서에 보면 집 앞에서 보초를 섰을 뿐만 아니라 정 목사의 경우 집 안에까지 들어와서 감시를 했다고 하는데요

답 : 집 안에도 들어오죠. 잠까지 자고.

문 : 아무리 박정희 시대라고 하지만 집 안까지 감시한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답 : 저같은 경우는 집 밖에서 24시간 감시를 당했어요. 제가 어디를 갔다온 것도 다 알고 몇시에 무엇을 했는지 다 알고 일거수일투족 놓치지 않고 감시할 정도로 철저하게 했죠.

문 : 그렇게 꼼꼼하게 기록했다면 정법영씨 돌아가셨을 때 관찰한 기록도 있었을 텐데요

답 : 정보부에서 없다고 안보여주죠.

문 : 의문사위 보고서에 보면 건장한 남자들이 정신을 잃은 정법영씨를 집에 데려다줬다는 말도 나오는데요

답 : 형사겠죠. 전 형사라고 봐요. "형사 이새끼들아 너 왜 술 안먹어"라고 형사들에게 하는 얘기를 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에 보면 다 이야기가 나올 거에요

문 : 지금 20대들은 아마 인혁당, 장준하 사건은 알아도 다른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를 모를 텐데요. 박근혜 후보 역사관 문제가 대두되는 시점이지만 정법영씨 사건 등은 별로 이야기가 안되는데 어떤 생각이세요

답 : 박정희 시대에 많은 대형사건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조명하는 것은 대형사건들 뿐입니다. 민중들의 작은 사건은 언론에서 조명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헤아릴 수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긴급조치 1호, 4호 등으로 들어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유신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갔어요. 

문 : 유신 시대 경험에 대해서도 좀 듣고 싶습니다.

답 : 긴급조치라는 것은 유신 반대하는 사람들을 잡아넣는 특별법입니다. 그렇게 잡혀가고 고등학생들도 모임을 가질 수가 없었어요. 제가 54년생인데 고등학생 때 청주독서회 활동을 했어요. 전후세대이기 때문에 전쟁을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가난한 민중들의 생활상을 눈뜨고 보지 못할 지경이었어요. 도시에는 빈민들이 더 많았죠. 그리고 이 도시에는 북에서 내려온 난민들 난민촌 수용소가 도시마다 수용소마을로 있었어요. 정진동 목사 사는 곳 맞은편에도 수용소 마을이 있었고요. 청주에 이런 곳이 두세군데 있었죠.

이런 때 정목사는 목사로서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넝마주이를 했어요. 넝마주이로 생계를 하고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 곳으로 교회를 짓고 자기 소신껏 민중해방을 위해 노력하신 대단한 분이죠.

문 : 당시 정진동 목사를 찾아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답 : 억울하게 죽었거나 땅을 빼앗겼거나 직장에서 해직됐거나 이런 사람들이 있었죠. 당시 (청주)시청 청소부 사건이나 이런 굵직한 사건들을 정목사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800여가지 사건들을 해결을 하려고 노력을 하셨어요.

문 : 청주 밖에서도 정 목사처럼 활동하신 분들이 많았죠.

답 : 그때는 종교계에서 운동권이 크게는 없었고 기청이라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가 있었어요. 문익환 목사님 계신 기독교장로회 저도 거기고 장준하 선생도 우리 교단 학교인 한신대 선배이시기도 하죠.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고은 선생, 인명진 목사, 함석헌 할아버지 등이 오셨고, 한완상 부총리도 정 목사님과 관계가 있는 분들이죠. 정 목사님은 지방에 계셨지만 서울에 계셨다면 대단한 역할을 하셨을 겁니다.

제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보에 함석헌 선생 관련한 글을 썼어요. 정진동 목사도 재조명해야한다고 봐요. 박정희 시대에 가장 많은 탄압을 받은 분이 정진동 목사에요. 탄압을 받는 과정에서 장남까지 잃었잖아요.

문 : 다시 과거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지금 보면 군부독재 시절도 공과가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 : 군부독재에 공이 어딨나요 아무것도 없죠. 그런 주장을 하는 세력을 이번 대선에서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가 어떤 사람입니까. 아버지 옆에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유신시대에 모든 것을 다 누렸던 사람 아닙니까. 그럼 사람이 다시 등장한다는 것은 군사독재의 부활입니다. 군부세력이 득세할 수도 있고, 5공 6공 세력이 다시 등장하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문 : 그래도 박근혜 후보가 장준하 선생이나 인혁당 유가족들에게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좀 인정해줘야 하지 않나요

답 : 인정을 해줄 수가 없죠. 그건 대통령이 되기 위한 쇼맨십일 뿐이니까 그런 화해는 받아주면 안됩니다. 저는 박근혜가 전태일 기념비에 오지 못하게 한건 잘한 일이라고 봐요. 사실 박근혜는 노무현 대통령 묘소나 518 묘소에 참배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걸 받아주는 민중들이 착한 것이죠. 이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또다른 탄압이 있을 겁니다. 이명박보다 더 많은 민중들을 탄압할 수도 있습니다.

문 : 혹시 박근혜 후보 주변 사람이나 새누리당에서 정법영 의문사 사건에 대해 화해를 시도한 적이 있나요.

답 : 한번도 그런 이야기가 거론된 적이 없어요. 성서에 보면 '의는 의로, 악은 악으로 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과거를 반성한다고 하지만 회개없는 반성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변화된 사람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는데 박근혜는 변화된 사람이 아니에요. 그 전에 그는 낡은 사람이에요. 낡은 사람이 새 옷을 입으면 새로 됩니까. 옷만 바꿔 입었는데 그런 것으론 안되죠

문 : 어떻게 해야 박근혜 후보가 변화했다는 것을 인정해주실 수 있을까요

답 : 박근혜를 용서하려면 대통령 후보를 그만두겠다고 하면 용서해줄 수 있죠. 후보를 그만둘 정도로 변화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지 어떻게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지 말도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용서를 받아줄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박정희 정권 시절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까. 대표적으로 한국의 유명한 음악가인 윤이상같은 사람은 고국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저먼 이국땅에서 죽지 않았습니까. 동백림 사건도 그렇고 수많은 사건이 있었잖아요.

정말 김대중 대통령 때랑 민주정부 10년간 반민족행위를 하고 친일파와 독재세력에 아부하고 부역한 사람들을 청소했어야 합니다. 특히 문제가 뭐냐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시켜줬다는 거에요. 김영삼 임기 때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약속을 해서 사면이 됐죠. 그것도 잘못입니다. 그래서 역사라 뒤틀리고 박근혜 같은 사람이 튀어나온 것이죠

문 : 그래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의문사위, 진실화해위 등 과거청산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까.

답 : 노무현 때 어땠습니까. 과거청산을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노동자를 너무 탄압했습니다. 제가 2년간 노무현 대통령 신행정수도 자문위원을 했어요. 제가 직접 말했습니다. (과거사 청산을 위해) 1만명을 청소해야 한다. 그러니까 노무현이 나보고 "목사님은 위험한 인물이군요"라고 했어요. 그때부터는 노무현 대통령과 발길을 끊었어요. 저도 민주화 과정에서 옥살이도 했고 많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지만, 정말 민주정부 10년간 너무 안일했다고 봐요. 그렇게 안일하니까 이명박에게 정권을 줄 수밖에 없었어요.

자기들만(김대중, 노무현) 생각하고 민중들의 생각은 안한거죠. 그때 얼마나 많이 민중들이 탄압받았습니까. 물대포도 많이 쏘고 많이 구속시키고 그랬죠. 지금 와서 노무현 대통령이 잘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뭘 잘했다는 건가. 그래도 민주정부가 독재정권보다는 나았다는 거죠. 하지만 확실히 바꾸지를 않았기 때문에 낡은 세력이 판을 치고 정권도 보수 쪽에게 넘어간 것이죠. 이명박 정부는 기독교 독재정권이라고 봐요.

문 : 확실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청산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일까요?

답 : 과거청산이 뭐냐면 정권교체가 곧 과거 청산입니다. 과거 청산을 하고 청소해야 할 세력을 쓰레받기로 쓸어담지 않으면 그건 과거청산이 아닙니다. 제 비유가 적절할지는 몰라도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심판의 대상이 누구냐 박근혜입니다.

문 : 청소해야 한다는게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이신가요

답 : 프랑스에서 한 것처럼 획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프랑스는 과거 히틀러 시대의 나치 협력자들을 지금도 찾아내서 응징하고 벌을 줍니다. 우리도 그런 것처럼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을 다 찾아내야죠. 그런 사람들을 놔뒀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결과가 생겻다는 겁니다

문 : 지금 김목사님 보면 청주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계신데 제가 알아보니 청주에 대형마트가 새로 들어온다고 해서 반대운동을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민주당이 대형마트 반대운동 등 하고 있는데 여기는 도지사, 시장 모두 민주당 사람인데 여기도 같은 문제가 벌어지는 것인가요

답 : 그 사람들이야 직위가 있으니까.. 그건 그럴수 있다 쳐도 시민단체도 잘 안와요.

문 : 지금도 서울에선 여러 시민단체들이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면서 대형마트 입점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답 :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시민단체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도 있고.. 그런데 이 사람들이 2주에 한번 의무휴일제를 지키라는 집회는 또 시청에 와서 해요. 거기서는 집회를 하고 이곳 천막에는 들르지도 않고 우스운 일이죠.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단적으로 말하면 구멍가게를 다시 살리고 슈퍼마켓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대기업이 잘나가야 우리가 잘사는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대기업이 순대 빵, 떡볶이, 아이스크림까지 요만한 것까지 다 해요. 김치 장사, 통조림까지 다 해요. 진짜 민주주의도 못하는데 경제민주화로 표 얻을 생각을 정치인들이 하지 말아라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문 : 과거사도 안됐는데 무슨 경제민주화냐 이런 말씀이시죠

답 : (경제민주화를 말하려면) 구체적으로 민중의 삶을 봐야죠. 떨어지긴 했지만 손학규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운 민주적인 가정의 모습입니까. 요새 보면 저녁을 가족과 먹는 것 많이 없죠. 아침도 제대로 못먹고 각자 헤어지잖아요. 이런 부분이 잘 되야 합니다.

문 : 그럼 문재인, 안철수 이런 야권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과거청산도 되고 경제민주화도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답 : 저도 바로 된다고 보진 않아요. 정말 깨달은 2040 세대가 우리 사회가 바른 길로 가도록 채찍질해야 한다고 봐요. 안철수건 문재인이건 완벽한 사람이 아니죠. 그 사람들이 잘못 가면 그에 대해 발은 말을 할 젊은 세대가 많이 나와야죠.

저는 이번에 과거사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역사공부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5·16에 대해 몰랐고, 장준하 사건도 몰랐고, 인혁당 사건도 몰랐던 젊은이들이 새로운 역사의식을 갖게 됐죠. 젊은이들도 새로운 나라가 어떻게 될지 고민하고 있겠죠.

문 : 젊은 세대에 기대를 많이 갖고 계시군요

답 : 난 요새 젊은이들이 우리 세대보다 더 많이 배운다고 생각해요. 스마트폰, SNS 이런 것을 활용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과거 우리보다 정치적으로도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죠. 더 많이 아는 젊은 세대가 나서면 (나라가) 바뀔 수 있습니다.

Posted by 주간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