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박정희 대통령과 그 딸인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972년 11월 21일 유신헌법 국민투표일에 투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2년 10월 17일 오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선포한 지 40년이 되는 날입니다.

3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조사가 진행중인 한 정치인은 "1972년 유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력 연장보다 수출 100억불을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경제민주화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여당 정치인은 유신 시절 벌어진 사법살인 사건인 인혁당 사건에 대해 "다들 배가 부른가 보지? (국민들은) 민생 때문에 난리인데. 그런 얘기는 안 하고"라는 평을 남긴 적도 있습니다.

<주간경향>은 그동안 다양한 기사로 유신 시대의 아픔과 어둠을 다뤄 왔습니다. 최근 기사부터 하나씩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박정희 정권이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 1960~70년대 농민들은 유신 지지했다?(994호)

박정희 정권 당시 농촌 새마을운동 현장 /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신이 선포된지 한달만인 1972년 1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쳤습니다. 이 투표는 91%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91%의 투표자가 유신헌법을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이 결과를 근거로 박정희 정권은 국민들의 받은 정권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구술사 연구자인 김영미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지난 9월 14일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열린 <역사가, '유신시대'를 평하다> 토론회에서 농촌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을 보낸 한 농민의 일기를 소개합니다. 새마을운동 지도자이자 공화당 당원이었던 이 농민은 일기장에서 5·16 쿠데타에 대한 비판 의견을 숨기지 않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부정선거에 대한 생생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유신헌법 국민투표에 대해서도 이 농민은 "선거관리위원회 참관인 모두 (유신헌법) 절대 지지자이다. 나 역시 찬성표를 했으나 공명투표가 아니어서 불쾌했다. 민주의 싹은 공명투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개헌안에 찬성은 하나 대통령의 권한이 외국에 비해 특권적이며 대통령이 종신을 하게 되지 않나 생각. 비상계엄 하의 개헌도 좋은 결과는 아닌 것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김영미 교수는 이 농민과 같은 사례를 "어렵잖게 볼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 농민처럼 박 전 대통령과 공화당을 흔쾌히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농촌 마을마다 한두명 씩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인혁당 사건, 장준하 사건 등 박정희 시대는 숱한 의문사 사건을 남겼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해 의문사 당사자의 유가족, 지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 의문사 주변인들 "박후보 변해야 과거사 용서"(995호)

박근혜 후보는 9월 10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냐.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인혁당 사건에만 '두 개의 판결'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는 군사독재정권 기간에 있었던 여러 의문사 사건에 대해 새로운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대표적 의문사 사건인 정법영 사건, YH노조 김경숙 사건 당사자의 유가족, 지인들의 말을 소개합니다. (자세한 사건 내용은 기사를 참조하세요)

의문사 피해 유가족인 조정숙씨(왼쪽), 정신영씨 / 백철 기자


- 조정숙씨(77, 정법영씨 모친)

"형사들이 자기집 드나들 듯 우리 집을 드나들며 감시를 했다. 당시 형사들이 아예 여기서 잠도 자고 밥도 지어 먹으며 생활했다"

"(박정희 시대를)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일에 대해 딸이 진심으로 사죄를 해야죠"

- 정신영씨(50, 정법영씨 동생)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경제를 좋게 만들었다든가 이런 면은 부정적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 이면에 억울하게 죽었던 사람들에게 보상 좀 한다고 해서 마음 속에 남은 것을 지울 수도 없죠.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 정치가 다시 나올까 걱정됩니다"

김창규 목사 / 백철 기자


- 김창규 목사(58, 정법영씨 동료)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는) 쇼맨십일 뿐입니다. 회개 없는 반성은 아무것도 아니며, 변화된 사람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박 후보가 대통령 후보를 그만둘 정도로 변화해야만 과거사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권순갑 대표, 최순영 운영위원장 / 백철 기자


- 권순갑 동방기획 대표(57, 김경숙씨 동료)

"인혁당 사건하고 우리 경숙이 사건이 너무 비슷하지 않아요?"

"절대 그렇게 안 하겠지만 박근혜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고 죽을 죄로 졌다고 사죄하면 용서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진실성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제 와서 장준하 선생, 인혁당 유가족에게 사과한다는 것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쇼로 보인다"

- 최순영 부천친환경무상급식센터 운영위원장(60, 김경숙씨 동료)

"한 번 태어난 생명을 가지고 연습할 순 없다. 생명이 이렇게 소중한데 하루 아침에 억울하게 사람을 죽이고, 역사의 죄도 이런 죄가 없다"

- 기타 박정희 시대의 의문사 사건을 다룬 기사들

* 2012년 오늘 '의문사 망령'은 살아있다(991호)

* 국가기관 비협조, 아직도 '감춰진 진실' 많다(991호)

또한 박정희 유신은 '긴조세대'를 양산했습니다. 긴조세대란 유신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특별조치인 '긴급조치'로 인해 법적인 처벌을 받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최근들어 법원은 긴급조치가 위헌이며, 무효라는 내용의 판결을  잇따라 내리고 있습니다. 최근 긴급조치 9호 재심 재판정에서 판사는 "유신시대가 폭압적인 시대였음과 아울러 그 야만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다"라며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긴급조치 재심' 긴급조치를 단죄하다(995호)

1974년 대학생들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군사재판을 받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늘 이 자리는 피고인 개인에게 유신시대의 기소 내용이 무죄라는 것을 밝히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한 유신시대가 폭압적인 야만의 시대였음과 아울러 그 야만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재판부로서는 과거에 선배 판사들이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사실에 대해 그들을 대신하여 사과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피고인들의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에 무한한 경의와 찬사를 표한다.”

지난 8월 31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재심’ 재판정에서 재판장이 읽은 판결문 중 일부다. 김형국씨(74)는 전화통화에서 “34년 만에 무죄를 확정하는 김재환 부장판사(형사11부)의 판결문을 들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 신동호의 '긴조9호세대 비화' 연재 시리즈(차후 업데이트)

유신은 과거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유신 시대 인물들이 아직도 현실 정치권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후보의 자문그룹인 '7인회'입니다.

'박정희 장물유산'도 아직 그대로입니다.

언제쯤 유신체제를 온전히 역사의 평가에 맡길 수 있는 날이 올까요?

 * 6인회, 7인회가 뭐길래?(979호)

7인회는 박근혜 후보가 자문을 구하는 원로 측근 그룹입니다. 그 인연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부터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7인회 멤버는 다음과 같습니다. -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현경대 전 의원, 강창희 국회의장

이 중 김용환 상임고문은 유신정권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최병렬 전 대표는 유신시절 조선일보 기자를 하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5년 12대 민정당 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했습니다.

안병훈 전 부사장은 유신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로 박근혜 후보와 안면이 있다고 합니다.

김기춘 전 장관은 검찰총장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파견검사 시절 유신헌법 제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용갑 전 의원, 강창희 국회의장, 현경대 전 의원은 전두환 정권 시절 정치권에 입성했습니다.


* ‘박정희 장물유산’ 언제 원소유주에 돌려주려나(807호)

‘박정희 가(家)의 유산’이란 박정희 정권이 부정축재 척결의 명분으로 강압적으로 헌납받은 재산이다. 그 재산은 국고에 귀속되지 않고, 사회 환원이라는 명목으로 세운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등으로 ‘은닉’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런 일련의 과정을 ‘부정축재의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겉으로는 공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유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 전 대통령이 강압적 수단을 동원해 착복한 재산을 그 자녀들이 마치 유산으로 물려받은 양 행세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정희 유산’은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의 유산을 관리·담당하는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정수장학회는 최대 지상파 방송 중 하나인 문화방송의 최대주주다. 또 지방 최대신문인 부산일보를 소유하고 있다.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사옥부지(2385㎡)의 금싸라기 땅도 정수장학회 소유다. 사학명문인 영남대학교 정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주(校主)로 적시되어 있다. 육영재단은 어린이회관 등을 소유하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강제로 헌납받은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자들은 아직 묵묵부답이다. 

* 박근령과 박지만의 육영재단 분쟁(807호)

* MBC 사영화, 박근혜가 웃는 까닭(807호)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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