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개혁을 위해서는 공평과세 확립, 세율 강화, 시민들의 직접 증세운동이 필요하다. 사진은 서울시 종로구 국세청 건물. / 김창길 기자


정책의제 다섯 | 조세개혁

오건호<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나라가 나라다운 역할을 하려면 일정 규모의 재정을 가져야 한다. 이에 세금을 공평하게, 그리고 필요한 만큼 걷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금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정부 역할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아 왔다. 세금은 공공의 적이었다.

다행히 근래 세금에 대해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등장한 복지 민심의 효과이다. 보편복지 실현을 위한 재정 확충을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조세개혁으로 논의가 귀결된다. 아직까진 정책적 공방 수준이지만 세금이 복지논쟁의 중심에 있고, 오는 대선에서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제는 기업활동에 우호적인 기존 경제개발형 조세체제를 서민생활 향상에 중심을 두는 복지국가형 조세체제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재정이 필요할까? 일단 OECD 회원국의 평균을 목표로 삼아보자. 현재 우리나라 복지재정 규모는 GDP의 9%로 추정된다. OECD 회원국 평균 19%에 비해 10%포인트, 금액으로 약 130조원 부족하다(올해 GDP 약 1300조원). 복지재정이 작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재정이 빈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9년 우리나라 국민부담률(세금+사회보험료)은 GDP의 25.5%로 OECD 평균 33.8%에 비해 8.3%포인트 적다. 부족한 복지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토목사업, 기업 지원 등 경제개발형 재정지출을 줄이고 복지분야를 늘리는 개혁이 급선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가재정 규모가 워낙 작아 지출개혁만으로는 복지국가에 필요한 재정을 모두 충당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국민부담률을 대폭 상향하는 증세가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조세 저항이 강한 곳에서 어떻게 증세를 추진할까? 세 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 첫째, 증세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평과세를 확립하는 일, 둘째, 복지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세율을 강화하는 일, 마지막으로 실제 재정 확충이 가능하도록 시민들이 직접 증세운동에 나서는 일이다.

공평하게 세금을 내자

첫째, 대대적인 증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두 공평하게 세금을 내는 과세 형평성이 확보돼야 한다. 우선 근로자와 자영자 사이의 불공평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 자영자의 경우 소득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사실상 탈세가 관행화되어 있다. 간이과세자들은 영수증 관리 의무에서 면제되고, 변호사·의사·학원강사·고급주점 운영자 등 고소득 자영자의 편법 탈세도 종종 언론에 등장한다. 하지만 신용카드 사용이 확대되면서 과거와 비교해 자영자 과세 인프라가 크게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자영자의 비용 공제 관행을 감안하여 그만큼 근로자에게는 근로소득공제도 제공되고 있다.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는 두 집단간 형평성 문제가 그리 엉망이지 않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근로자와 자영자의 공평과세는 고소득 자영자에 대한 엄격한 세무관리, 신용카드/체크카드/현금영수증 사용 확대 등을 통해 형평성 강화작업에 박차를 가하되 지금까지 개선된 성과를 제대로 알리는 적극적인 홍보도 요청된다.

대기업 과세와 금융소득 과세에선 여전히 형평성 문제가 크게 존재한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4.2%(지방세 포함)로서 OECD 평균 25.6%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구 임시투자세액공제), 연구·인력개발비세액공제 등 법인세 감면이 대기업에 집중돼 중소기업의 실효세율이 22.0%인 데 비해 대기업의 실효세율은 16.5%에 불과하다. 심지어 10대 재벌기업은 평균 15.1%로 더 낮으며 삼성전자의 실효세율은 11.9%이다. 사실상 대기업 세금특혜 제도로 전락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와 연구·인력개발비세액공제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소득 과세 사각지대도 없애야 한다. 개인투자자(지분 3% 또는 금액 100억원 미만)라는 이유로 주식양도차익에 과세하지 않는 현재의 조치는 조세정의에 심각하게 역행한다. 모든 주식양도차익에 예외없이 과세가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증권거래세법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던 파생금융상품에도 이제는 거래세가 부과되는 게 당연하다. 금융소득종합과세는 2002년 헌법재판소의 부부합산과세 위헌판결로 사실상 적용 기준금액이 4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상향되어 고액 금융소득자에 대한 누진과세 취지가 크게 훼손되어 있다. 애초 가구별 금융종합소득 4000만원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 기준 2000만원으로 적용 기준금액을 하향해야 한다.

능력껏 세금을 더 내자

둘째, 세율 인상을 통한 적극적 증세에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 세목 중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소득세이다. 2009년 우리나라 소득세 규모는 GDP의 3.6%로 OECD 평균 8.7%에 비해 무려 5.1%포인트가 작다. 2012년 기준 금액으로 65조원이나 부족하다. 낮은 최고세율, 최고세율 적용 대상자의 작은 규모, 다양한 조세감면, 과세 사각지대 및 탈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우선 세입 확보와 증세 상징성을 위해서 소득세 최고세율 상향 조치가 요구된다. 최고세율을 현행 38%에서 42%로 올리고 적용 금액도 현행 3억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낮추자는 참여연대 제안이 적절해 보인다.

법인세 강화도 중요한 과제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대기업의 실효세율은 평균 16.5%에 불과하므로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법인세 감면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은 법인세와 별도로 사회보장기여금에서 외국 기업에 비해 부담이 가볍다. 2009년 기업의 사회보장기여금 부담이 GDP의 2.6%로 OECD 평균 5.2%의 절반에 머문다. 우리나라 기업에는 사회보장기여금 납부가 적은 만큼 법인세의 인상 여지가 존재한다. 이윤이 100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현행 22% 세율을 27% 혹은 30%로 인상하자는 시민단체나 진보정당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부동산세제도 개혁 대상이다. 낮은 부동산 보유세가 핵심 문제인데, 특히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로 인해 2007년 2조4000억원이었던 종합부동산세가 2010년 1조원으로 축소되어 있다. 최소한 노무현 정부 수준으로 종합부동산세가 원상회복돼야 한다.

시민이 증세운동에 나서자

셋째, 복지국가형 조세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힘을 만들어야 한다. 증세가 정책 공약에 머물지 않고 실제 진행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주체로 나서는 재정주권운동이 요청된다. 이때 두 가지 논점이 등장한다.

하나는 소득세, 법인세 등 보통세 증세인가, 아니면 복지지출과 연동된 복지목적세 증세인가이다. 우리나라는 재정지출에 대한 신뢰가 약하기 때문에, 보통세 증세보다는 복지지출로 사용처가 정해져 있는 목적세 증세운동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에 따라 나는 소득세, 법인세 등을 직접 인상하기보다는 각 직접세에 누진세율을 다시 매기는 부가세(surtax)로서 사회복지세 도입을 제안한다. 무상의료 재원의 경우 가입자가 직접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이를 지렛대로 해 사용자 몫을 늘리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도 의료목적세 방식의 증세에 속한다.

또 하나의 논점은 증세 대상을 부자에만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일반 시민도 참여하는 보편 증세까지 나아갈 것인가이다. 나는 부자들의 세금 납부를 실질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보편복지를 바라는 시민들이 증세에 참여하는 능력별 ‘보편 증세’를 지지한다. ‘내라’보다는 ‘내자(낼테니 내라)’가 훨씬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내자’를 주창하는 풀뿌리 활동단체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도 등장했다. 복지국가를 바라는 시민들이 이제는 관람자(observer)에서 행위자(actor)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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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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