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20일, 서울 종로구 함춘회관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출범식이 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없애는 방향으로 건강보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 연합뉴스


정책의제 셋 | 의료복지 강화

임준<가천대학교 의학전문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

사회구성원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최고의 건강 수준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있다. 이때에 사회구성원은 국민의 범주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 유학생, 난민 등 국민의 범주에 들어 있지 않더라도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고, 그것은 건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건강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이기 때문에 사회와 국가가 건강문제를 가장 우선적 가치로 삼아야 한다. 건강의 차별을 낳는 보건의료, 환경, 제도, 건강인프라의 계층간·지역간 차이를 해소하고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격차나 문화적 격차까지 줄여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 삶이 행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는 미래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의료급여 수급권자 범위 확대해야

이러한 미래는 하루 아침에 달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변화가 요구된다. 그 변화의 시작점은 19대 국회일 것이다. 과거와 달리 거의 모든 당선자들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동의하고 국민이 건강해지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의료복지를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 여야를 떠나 건강만큼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약속이 행동으로 옮겨지느냐의 문제인데, 국민의 감시와 참여가 필요한 대목이다.

변화의 첫 꼭지는 건강보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아서 의료비 부담으로 가계가 무너지는 상황을 방치하고서 국민 건강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과거처럼 보장성을 높이겠다는 선언은 무의미하다. 건강보험 설계 자체를 다시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항목이 존재하는 한 건강보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미용 목적의 성형 등을 제외하면 안전성과 효과성이 인정되는 모든 의료서비스가 건강보험에 포함되는 방향으로 건강보험의 재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인구 노령화와 핵가족화 등으로 가족을 통한 간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간병비의 급여화 문제도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무한정 치료비 부담이 증가하는 현 건강보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안전성이나 효과성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술, 검사, 약제 등의 항목은 사용을 금지하고 신의료기술 및 신약에 대한 급여 절차의 합리적 개선도 이번에 같이 다루어져야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재정비해야

의료복지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는 의료급여와 산재보험의 개혁도 19대 국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범위를 최저생계비의 150% 수준까지는 확대해야 가난한 사람의 의료보장이 가능하다. 의료급여 대상자는 아니지만, 가난한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하여 건강보험료를 경감해주거나 경영이 열악한 소규모 사업주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여 의료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산재보험도 택배나 퀵서비스 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산재직업병 환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신청 및 승인절차를 건강보험에 준하여 개선해야만 산재직업병 환자가 최적의 진료를 받고 원직장 복귀가 가능해질 수 있다. 그리고 산재보험에서 지급되어야 할 비용이 건강보험으로 지급되는 문제를 해결하여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면 당연하게 비용이 발생한다.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 정부, 기업, 가입자 등이 건강보험의 연대 정신에 맞게 나누어 부담하면 된다. 그러나 그 전에 최소한 건강보험료의 부과체계나 재정에서 국고 비율 등과 같이 잘못 설정되어 있었던 부분을 바꾸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직장의 경우 임금에 기초하여 보험료 부과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종합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 부과 기준을 변경해서 고소득자이면서 보험료를 회피하는 대상을 줄여나가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 건강보험재정을 국고에서 지원하는 비율 역시 높여야 한다. 건강보험재정은 보험료 수입과 국고지원으로 조달되고 있는데, 이 중 국고지원 비율인 현행 20%를 30%로 상향 조정하여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쓰임새도 좀 더 촘촘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건강보험의 30%는 약품비가 차지하고 있고 약품비의 증가율이 진료비 증가율을 상회하고 있다. 가격 중심의 규제정책만으로 약품비용의 합리적 조절이 쉽지 않다.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진료비 지불제도의 정비, 참조가격제도 실시, 성분명 처방의 확대, 약품의 수급 절차에 대한 개선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하여 약품비용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급속하게 성장하는 민간의료보험의 규제도 꼭 필요하다. 2008년 기준으로 시장규모가 33조원까지 증가한 민간의료보험 때문에 국민의료비의 지속가능성이 무너지고 있다. 가계 부담의 증가와 의료 이용의 불평등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에 대하여 선진외국과 같은 수준의 규제조치가 필요하다. 민간의료보험 상품의 표준화, 실손형 상품의 규제, 일정 수준 이상의 지급률 보장 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보험업법 개정이나 별도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민간의료기관 공공적 기능 독려해야

사실 재정만 마련되어 있다고 해서 국민의 건강권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보건의료가 시장에서 물건 사고 팔 듯이 거래되는 현실을 바꾸어야만 우리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다. 의료의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비영리기관으로서 공공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민간의료기관이 영리추구적인 행위를 할 수 없도록 의료전달체계도 확립하고, 의료법에 근거하여 당연히 해야 할 규제조치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시민과 환자 참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참여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

이렇게 민간의료기관이 공공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뿐 아니라, 공공병원이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 나가는 데에 촉매제 역할도 하고, 전체 의료기관의 리더 역할도 할 수 있도록 시설 및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당연히 의료의 질을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국회에서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규의 개정 또는 보강이 필요하다. 공공병원과 더불어 도시보건지소를 확충하고 보건소 보건지소 등 보건기관의 기능을 만성질환의 시대, 건강증진의 시대에 맞도록 그 기능과 구성을 재설계해야 한다. 공공병원, 도시보건지소 등의 확충과 맞물려 보건소와 공공병원이 단일한 협력체계 또는 공공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여 지역주민의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률도 만들고, 국민을 대신하여 보건복지부 등 행정기관이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좀 더 구조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이 19대 국회에서 다루어졌으면 좋겠다. 영국, 스웨덴 등 선진국에서는 건강 불평등의 해결이 국가 보건정책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고, 이를 위해 범정부적 노력을 수행하고 있다. 선진외국과 같은 수준으로 전면적인 논의를 하기 어렵다고 하면 우선적으로 건강영향평가라도 빨리 다루어져야 한다. 건강영향평가의 제도화가 되어야만 건강수준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해소해나가기 위한 정책의 수립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19대 국회의 개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기선잡기가 한창이다. 여와 야의 내부에서도 계파간 주도권 다툼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고단한 삶에 천착한 희망의 정책을 치열하게 준비하는 모습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개별 의원들 사이에 그러한 희망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국회의원들이 총선에서 한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다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19대 국회에 국민의 의지를, 그리고 희망을 옮겨놓아야 한다. 금배지의 주인이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임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일깨워주는 것도 우리 국민이 해야 할 고달픈 의무가 아닐까

- <한국사회를 바꾸자> 20개 정책의제 전체읽기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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