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은 '한국사회를 바꿀 20개 정책의제'를 뽑았다. 2012년도 이미 반환점을 지나고 있는 지금, 시민들은 과연 2013년 우리 사회가 희망을 돛을 올리고 출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해 12월 30일 임진년 새해를 보기 위해 정동진을 찾은 시민들. /연합뉴스


 한국사회를 바꾸자 20개 정책의제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20개 정책의제’는 주거·의료·교육 등 생활과 직결된 현안부터 노동자 권리 강화·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노동 현안, 재벌개혁·중소기업 보호·금융 공공성 강화 등 경제 현안, 다문화 시대 이주민 인권 문제·탈핵 등 사회적 인식 전환, 농촌살리기·수도권과 지역의 균형발전 등 국가발전 전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2010년 10월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 포럼에서 21세기 첫 10년간의 우리 사회를 “극단적인 반인간화의 상황”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는 포럼에서 “한국적 삶은 오늘날 ‘외면적 물질적 성취’와 ‘내면적 인간적 파탄’의 기묘하고도 불안한 장기 공존을 보여주고 있다”며 “오늘 한국 사회가 시급하고 절박하게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반인간화의 탁류를 인간화의 방향으로 바로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피로도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진단이다.

시민들이 인간적 삶을 지속하기 힘든 조건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은 어느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2000년 이후에 조사된 각종 사회적 지표들이 정치적 왜곡의 여지 없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1%대 99% 사회’를 향해 치닫고 있다. 소득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멕시코 다음으로 심각한 수준이고, 노동시간과 자살률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5년 이후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출산율은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암울한 방증이다. 그동안 국가는 무엇을 했을까. 국가가 국민 복지를 위해 지출하는 공공복지지출 규모에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경제규모가 비슷한 국가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국가가 충분한 안전판 구실을 못 하는 사이에 시민들이 제각기 홀로 분투하고 있는 형국이다.

<주간경향>은 먼저 그간 시민사회에서 제기한 사회·경제적 개혁 논의와 여야의 총선 공약, 각 정당의 정강·정책 중 공통분모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20개 정책의제들을 뽑았다. 그런 다음 대표적인 싱크탱크와 시민사회단체 등 15개 단체에 의제들의 적합성에 대한 의견을 묻고 각 단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책들을 최대 5개까지 선택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중 12개 단체가 응답을 보내왔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정책의제를 확정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사안별로 글을 부탁했다. 전문가들은 현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조세개혁·경제민주화·청년실업 가장 시급

‘20개 정책의제’는 주거·의료·교육 등 생활과 직결된 현안부터 노동자 권리 강화·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노동 현안, 재벌개혁·중소기업 보호·금융 공공성 강화 등 경제 현안, 다문화 시대 이주민 인권 문제·탈핵 등 사회적 인식 전환, 농촌살리기·수도권과 지역의 균형발전 등 국가발전 전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주간경향>에 응답을 보내준 단체는 그 중에서도 ‘조세제도 개혁’(7개 단체) ‘경제민주화’(6개 단체) ‘비정규직’(5개 단체) ‘청년실업’(4개 단체)을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정책 현안으로 꼽았다. 상위에 오른 이 네 가지 주제들을 꿰뚫고 있는 어젠다가 바로 경제민주화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세개혁에 관한 글을 쓴 오건호 글로벌정치연구소 연구실장은 조세개혁의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과세 형평성 확보’ ‘세율 인상을 통한 적극적 증세’ ‘조세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힘의 구축’이 그것들이다. 근로소득자와 고소득 자영업자 사이의 과세 형평성을 확보하고, 소득세·법인세·부동산 보유세의 세율을 인상하며, 정치권에 증세를 압박하기 위한 시민 재정주권 운동을 하자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경제민주화론자인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소수 특권층을 위한 무조건적인 경제성장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삶의 질과 행복의 수준을 하락시킨다”며 “좋은 성장은 모든 이들에게 최대한 기회의 평등, 참여의 평등을 보장하고, 그리하여 분배의 평등도 제고되는 민주적 원리에 입각해서 경제가 작동할 때 가능하다. 이것이 곧 경제민주화다”라고 말한다. 그 핵심은 ‘법 앞의 평등’ ‘경제적 합리성’ ‘공정한 경쟁’의 원칙에 입각한 재벌개혁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800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는 “21세기 한국 자본주의의 맨얼굴”이라며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적용’ ‘노동기본권 보장’ ‘불법파견에 대한 엄격한 처벌’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청년실업은 문제가 심각한 만큼 해법도 단순하지 않다.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는 불필요한 고학력화는 청년실업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하면서 학력과 직종에 따른 임금 격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구조개혁 노력은 또한 대학교육을 정상화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강조한다.

공교육 정상화·사법개혁도 긴급과제

앞선 4개 정책의제 다음으로 중요한 의제로 꼽힌 것은 ‘공교육 정상화’(3명) ‘사법개혁’(3명) ‘생태적 사회·경제 구축’(3명) ‘저출산 고령화’(3명) 문제다. 공교육 정상화의 방법은 무엇일까. 전가의 보도와 같은 정책은 없다. 이철호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은 한국 공교육의 문제를 “교육의 시장화”라는 말로 요약한다. 교육의 시장화는 공적 영역에 속해야 할 교육을 “자녀의 미래를 위한 합리적인 투자행위”로 전락시켰다. 사법개혁의 핵심에는 검찰개혁이 자리잡고 있다. 검찰의 문제는 권한은 비대한데 그것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정치검찰 청산’ ‘기소권과 수사권의 분리’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생태적 사회·경제는 원자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원전 관련 정책 결정에서 사회적 합의와 소통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가에너지위원회를 상시 기구로 바꾸고 국회가 지식경제부의 국가에너지계획을 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단순한 인구 문제나 기성 인구의 노령화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력 감소, 세대간 갈등, 재정건전성 등 여러 영역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2026년까지 불과 13년밖에 남지 않았다”며 소득보장, 일자리 창출, 남성과 여성의 돌봄노동 분담 등 종합적인 해법 마련을 주문한다.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 수립에 대한 열망은 결국 복지국가에 대한 요청으로 수렴된다. 새 정부가 추구해야 할 개혁 대상들은 성장일변도 국가전략에서 파생된 부정적 유산들이기 때문이다. 책 말미에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의 인터뷰를 실은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정책의제 1. 청년실업 해소. 일할 의무만 아니라 일할 권리도 있다 / 김성희 고려대 경제학과 연구교수

정책의제 2. 주거복지 강화. 부동산 정책 복지 가치에 중점둬야 /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정책의제 3. 의료복지 강화. 건강보험 적용 의료서비스 확대해야 / 임준 가천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

정책의제 4. 저출산고령화시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자 /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책의제 5. 조세개혁. 복지국가형 조세를 위한 세 가지 과제 /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정책의제 6.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 미궁'에서 벗어나야 한다 / 이철호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정책의제 7. 대학 개혁. 교육의 질 높이고 반값등록금 실현 /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장

정책의제 8. 사법개혁. 과도한 검찰 권한 견제장치 시급 / 김인회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

정책의제 9. 경제민주화. 공정경쟁 해치는 재벌 개혁이 핵심 /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정책의제 10. 대기업, 중소기업 상생. 재벌의 중소기업 업종 진출 금지해야 /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장

정책의제 11. 금융공공성 강화. 금융회사는 더 강력한 사회적 책임 요구 /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정책의제 12. 노동자권리 강화. 최저임금 인상 인간다운 생활 보장을 /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정책의제 13. 비정규직 축소와 처우개선. 노동 기본권 보장하고 차별 줄여라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정책의제 14. 방송의 공영성과 독립성. 공영방송 사장임명 권력입김 배제를 / 이남표 MBC연구위원

정책의제 15. 생태적 사회경제 구축. 핵발전 중단, 재생에너지 전환 / 이현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정책의제 16. 지역균형발전. 균형발전 없이 국가선진화 없다 /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정책의제 17. 한반도 평화체제.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말해야 한다 /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정책의제 18. FTA 재검토. 동시다발적 FTA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로 /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정책의제 19. 다문화 사회 정착. 이주민에 대한 인권적 접근 필요 / 김기돈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정책의제 20. 농촌 살리기. 먹거리는 국민의 기본권리다 /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 "보편적 복지국가가 공정경제 달성"(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인터뷰)



‘정책의제 20’에 대해 의견을 보내준 단체와 전문가들

고계현 사무총장(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김승호 부소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l 박용덕 사무국장 (건강세상네트워크) l 심광현 정책위원장 (문화연대·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l 이상이 공동대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l 이태경 사무처장 (토지정의시민연대) l 이남신 소장 (한국비정규노동센터) l 이철호 사무처장 (학벌없는사회) l 염형철 사무총장 (환경운동연합) l 위평량 상임연구위원 (경제개혁연구소) l 정창수 부소장 (좋은예산센터) l 조흥식 소장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서울대 교수)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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