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한국에서 더 어려운 것은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는 일일 것이다. 빌 게이츠라는 이름은 단순히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아이콘만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융합된 개념으로 봐야 한다. 초창기의 ‘컴퓨터 천재’, 전성기의 ‘경영 귀재’, 지금의 ‘기부 큰손’ 등으로서 말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스스로 한탄한 ‘빌 게이츠도 성공하기 어려운 한국’에서 23년간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더니, 이제는 빌 게이츠마저 ‘뛰어넘고’ 있다.
적어도 한국 대학생은 그렇게 생각한다. 최근 취업포털 알바몬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안 원장은 ‘함께 일해보고 싶은 최고경영자(CEO)’ 1위에 올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을 2~4위로 밀어내고서 말이다.





‘안철수’라는 이름이 요즘 여러 지점과 영역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다. 이를테면 구직자가 가장 존경하는 CEO, 과학기술인이 꼽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과학기술인, 정보통신(IT)·미디어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네티즌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싶은 국내 지식인, 직장인이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 등 각종 설문조사에서 단골 1위다. 여·야 정당의 ‘영입 0순위’이자 ‘십고초려’ 대상이기도 하다.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3년째 전국을 순회하며 진행하는 ‘청춘콘서트’도 폭발적이다. 특별히 홍보하는 것도 아닌데 2000~5000명이 몰린다.
마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연 6000여 건의 강연·인터뷰·면담 등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으며, 그를 다룬 책만도 300종이 넘게 출판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국민 멘토이자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를 서울 여의도 안철수연구소에서 만났다.

융합과학이라는 게 어떤 것입니까.

“지나가다가 간판을 보고 핵 연구하는 데냐고 하는 분이 있더라고요.(웃음) 그 정도로 아직 정립이 되지 않은 분야이긴 합니다. 사회나 자연현상이라는 게 여러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 가지 분야나 시각으로는 전체를 다 볼 수 없게 됐잖아요.
학문의 경계를 아무리 잘 나눈다고 해도 빈틈이 자꾸 생기니까 분야와 분야 사이의 그런 부분, 즉 경계선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아요. 따로 떨어져 있던 학문 영역을 서로 아우르고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융복합 기술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정이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전문 분야는 이미 선진국이 많이 앞서 가서 사실은 우리나라가 따라가기가 벅찬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안 한 분야에 그나마 새로운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에서 아마 국가 R&D(연구·개발)도 많은 부분이 융합 쪽으로 배정이 되고, 그게 자꾸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지식의 융합과 복합이 세계적 메가트렌드임은 업계도 인식하고 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지구상에 새로운 물질은 없고 새로운 융복합만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의대 교수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벤처기업 CEO, 경영학 교수 등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이나 분야에 ‘도전’해 온 안 원장이 정년이 보장된 카이스트 석좌교수 자리를 떠나 서울대로 온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카이스트에서 서울대로 옮겨온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카이스트에서 참 편했습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데도 익숙해지고, 외부 강연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주위에서 다 좋은 말씀만 하시고…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그런데 많은 분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사회를 위해 더 공헌하라는 것이어서요.
제가 이제 50대에 접어드는데 가장 일을 많이 해야 할 나이잖아요. 편하게 살 게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더 많이 맡아서 더 일을 해야 하는 시기 같던데요? 카이스트에서는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 즉 더 많은 책임을 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분야의 경험, 다시 말하면 행정을 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 경영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가와 공헌한 직원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평가하고 보상해 주는가죠. 행정은 그 두 가지가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행정에서 중요한 건 또 다른 두 가지더라고요.
첫 번째는 어떻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에다 돈을 쓰는가이고, 두 번째는 그런 자원 배분을 어떻게 이해관계자들을 전부 설득하고 소통을 해서 이해를 구한 다음에 하느냐인 거죠.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완전히 다른 두 가지가 중요한 부분이라서 이거 한번 경험을 해봐야겠다, 학교 행정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카이스트에서는 그런 기회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까.

“아쉽게도 (서울대에서 제안한 지) 한 달 정도 뒤에 카이스트에서도 학장직을 제안했거든요. 한 달만 더 빨리 말씀하셨으면 그 뒤에 어떤 대학에서 제안했더라도 안 갔을 텐데….
제가 구두 약속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럴 리도 없었겠지만 만약 서울대에서 경영대학장을 제안했으면 안 갔을 거예요. 거기는 제가 굳이 가서 많이 바꿔놓거나 할 여지가 적잖습니까. 여기(융합과학기술대학원)는 제가 흔적을 남길 수 있고, 개인적으로 경험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 원장의 이 말 속에서 그의 중요한 인생철학 세 가지를 읽을 수 있었다. 구두 약속도 저버리지 않는 데서 ‘정직한 경영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안철수연구소 CEO 시절의 기업철학이 떠오른다.
그 다음은 ‘스파이더맨은 힘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있으면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한 사회적 책임감, 그리고 ‘어떤 자리에 오르느냐가 아니라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는 그 특유의 ‘흔적론’이다.

최근 산업계의 양극화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익공유제 도입보다 대기업의 불공정한 관행 근절이 먼저라고 말했습니다. 오랜 관행을 뿌리뽑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익공유제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적으로는 유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말의 의미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결과로서 대기업이 부자가 됐으니까 못 사는 중소기업에 좀 나눠주라는 거거든요.
중소기업들이 거지도 아닌데, 일을 했으면 거기에 대해 적절하게 보답을 받는 것 아닙니까. 과정이 정당해야 합니다. 실제로 보면 우리나라만큼 잘된 법이 없어요. 현행법만 제대로 잘 지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안 원장의 표현이 조금 거칠어졌다.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나중에 정리하니까 그렇게 보였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언성을 한 번도 높이지 않았고, 크게 웃는 법도 없었다. 강한 표현도 부드럽게 들리게 하는 그의 말투가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현행법을 제대로 잘 안 지켜서 발생하거든요. 요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헌법 119조 2항 있잖아요. 헌법에 있으니까 그건 좌파 이념이 아니잖아요. 대기업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비판하면 색깔논쟁으로 몰고 가는, 그런 굉장히 비열한 프레임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고 너무 어처구니없어 반박의 가치조차 없는 논리더라고요.”

이번 정권 들어와서 ‘기업 프렌들리’라고 하면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부 출범 때부터 시장 친화적인 정책 또는 규제 철폐 좋다, 그렇지만 규제만 철폐하고 감시 기능을 강화하지 않으면 불법적인 약탈 행위를 방조하는 결과가 나온다고 했어요. 축구 경기에서 룰이 많으면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룰은 단순화하되 심판의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요. 심판을 다 없애버리면 반칙 일어나는 무법천지가 되니까요.
결국 대기업에 특혜만 주고 그냥 놔두다 보니까 중소기업은 불공정 거래 관행에 빠져서 양극화가 더 심해진 것 아닙니까. 지난 3년간이 아니라 사실은 10년간이죠. 좌파 정부든 우파 정부든 양극화 쪽에는 양쪽 다 주범이라서요, 이념 논쟁은 이제 좀 지긋지긋합니다.”

계층 양극화에 이어 기업 양극화까지 앞으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기득권이 과보호되고 권력층이 부패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층 간의 이동이 단절됐을 때 거의 예외 없이 나라가 망하더라고요. 그런데 기득권은 그걸 깨닫지를 못하죠. 프랑스혁명 당일에도 베르사유 궁전에서 무도회가 열렸잖아요.
이대로 놔두면 거의 공멸하는 길밖에 없으니까 앞으로 우리 전체를 위해서는 기득권도 제발 정신 차리고 시민이나 중소기업도 다 같이 문제인식을 하고 공감을 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건의해서 바꾸어 나가는 주체가 돼야 될 것 같습니다.”

안 원장은 기업 풍토나 정책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해왔다. 이를테면 한계기업이 눈먼 돈으로 연명하면서 건강한 다른 기업도 부실의 늪에 빠뜨리는 ‘좀비경제’, 재벌과 계약하는 순간 재벌 동물원에 갇혀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산업계의 ‘동물원 구조’ 등에 대해서 말한다.

안 교수께서 그런 비판을 세게 해도 공격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강연 초청이나 심지어 영입하려고들 하니까요.

“사실은 굉장히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제 느낌이 어떠냐면, 벌판에 초식동물 혼자 나와 있는데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못 잡아먹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사실은 그렇게 강성도 아니고 좌파·우파 이념논쟁에 빠진 사람도 아닙니다. 상식과 비상식, 이게 저한테는 제일 큰 잣대라서요.
어쨌든 보는 눈이 많아서 불만 있는 사람도 가만히 보고 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벤처기업 일으키고 나름대로 성공하고 지금 서울대학교 교수니까 걸어온 트랙 자체가 좌파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또 그쪽에서 보면 좌파적인 말을 계속 하니까 참 곤혹스러운 상대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겠고요. 또 한편으로는 아마도 기본적으로 낙관과 애정이 깔린 상태에서 비판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대학교수가 안 원장을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 같은 분이라고 하더군요. 현자의 역할을 한다는 뜻도 있지만 은둔자처럼 혼자서 이야기한다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이나 연대를 통해서 같이 목소리를 내면 한층 힘이 실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데 대한 섭섭함이랄까요.

“예, 그러니까 제가 전국 순회강연 다니는 게 사실은 그런 맥락인데요. 생각이 같은 사람이 많아지고 같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사회가 변화되리라고 저는 믿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혼자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박경철 원장이라든지, 법륜 스님이라든지… 점점 확장이 되고 있습니다.
박경철 원장은 질문자고 제가 답을 하는 역할인데요, 이번부터는 각 분야마다 게스트를 한 분 초청했습니다. 예를 들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조국 서울대 교수, 김여진씨, 삼성경제연구소의 곽수종 박사 등 좌우보다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최소한 생각이 같은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 자본주의 경영학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와튼스쿨을 나왔는데, 그해(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붕괴음을 내지 않았습니까. 안 원장께서 직접적으로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거나 지속가능경제, 기업사회책임 같은 걸 강조하는 걸 잘 볼 수 없는데, 전체적으로는 말씀 중에 그런 내용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공존과 장기적인 시각, 불평등 해소 내지는 격차 해소, 이런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요. 처음에 V3를 만들어 무료로 보급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정치는 잘 모르고 체질에도 잘 안 맞는다고 말했는데 정치권이 진짜 ‘십고초려’를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하하.(웃음) 십고초려는 그 표현을 제가 했는데 원희룡 의원이 썼더라고요. 절대로 열 번까지 안 옵니다.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제안을 거부했던 이유가, 혼자서 들어가서는 아무 것도 바꿔놓지 못한다고 많이 말씀하시는데요, 저도 예외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제가 제일 하기 싫은 일이 저 혼자 들어가서 높은 자리에서 다 대접 받다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그냥 나오는 겁니다. 생각이 같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들어가 동시에 바꿔놓으면 그거야 말로 좋겠는데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 혼자서 바꿀 수 없으니까 포기하는 게 아니라 (전국 순회강연처럼)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하고 있는 중입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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