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닐 때 어디에든 전설적인 인물이 꼭 한 명쯤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잘 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다는 전설적인 선배가 있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나 학생들의 입을 떠돌면서 자연스럽게 전설이 된 것입니다.

대학교 때에는 운동권 출신들이 전설적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시 수많은 대학생 팬을 거느린 김민석 전 의원이나 항소이유서로 필명을 날린 유시민 참여당 대표도 당시 전설 속의 인물이었습니다.
과에서는 모범생으로 공부를 잘 한 선배가 대학원에서 운동권의 유명한 이론가로 변신한 것도 우리에게는 전설이었습니다. 이들은 도발이(수배를 당해 도망다니던 운동권 출신)이거나 아니면 감옥에 갇혀 실제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얘기는 구전으로만 전설이 돼 떠돌아다녔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 덕분일까요? 사회에 나와서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전설로 불렸던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전설 속의 인물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으니 영광이라면 영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에게는 ‘당신이 우리에게는 전설이었다’라고 말을 건네보았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미소로 그냥 답을 대신하거나, 아니면 손을 내저었습니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는 의미겠지요.


 

고향에 가면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동네사람들은 사라호 태풍 전에 태어난 사람들과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구분했습니다. 1959년 9월 추석 때 덮친 이 태풍으로 전국적으로 849명이라는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신문기사를 보니 40년 만의 태풍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지난해 추석 때 서울에 내린 폭우를 일부 언론에서는 100년 만의 폭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100년 만의 폭우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100년 만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멋쩍어졌습니다. 전설 같은 100년 전 폭우가 이제는 일상이 됐습니다. 그냥 100년 전의 폭우가 전설로만 남아 있으면 좋을 테지만 기후적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은 ‘레전드’라는 용어를 많이 씁니다. 전설이라는 말입니다. <주간경향>은 한국 벤처기업의 살아있는 전설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만났습니다. 언론은 전설 속의 인물을 그대로 놔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인터뷰를 하려고 시도합니다. 지난 5월에 창간 19주년 기념호에 그를 표지인물로 인터뷰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번에야 그를 만났습니다. 

재벌 기업이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안철수 교수의 존재는 정말 전설 같습니다. 언론은 인터뷰를 함으로써 그를 현실 속의 인물로 끌어내리고자 하지만 그가 또 어떤 전설을 남길지 기대됩니다.
이번 폭우가 정말 100년 만의 폭우라고 믿고 싶은 것처럼, 그래서 이 폭우를 오랫동안 전설로 남겨두고 싶은 것처럼, 그가 영원히 우리에게 전설같은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Posted by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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